WIN문화포럼 20일 열려
딸 유이화 건축가 강연
자연을 사랑한 거장의 작품과 철학
평생 한-일 경계 넘나들며
아름다운 건축물 다수 남겨
11월 제주 ‘이타미 준 뮤지엄’ 개관 예정

유이화 ITM건축연구소 대표이사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3차 WIN 문화포럼 이타미 준의 건축과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유이화 ITM건축연구소 대표이사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3차 WIN 문화포럼 이타미 준의 건축과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다.”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소박하고 따스한 온기를 건축물에 담고자 했던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 본명 유동룡)은 오늘날에도 건축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 제주도 ‘포도호텔’, ‘방주교회’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룬 그의 건축물은 경탄과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의 주제는 이타미 준의 건축과 거장의 철학이었다. 이타미 준의 딸이자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이사장,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장인 유이화 건축가가 직접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건축가 이타미 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  ⓒ영화사 진진 제공
건축가 이타미 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 ⓒ영화사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은 한국과 일본, 건축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 예술가다.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종종 차별받으면서도 평생 귀화를 거부하고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성씨인 ‘유(庾)’가 일본 활자에는 없어서 예명을 지었다. 생애 처음 이용한 공항인 일본 이타미(伊丹) 국제공항, 절친했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潤)에서 이름을 따와서 ‘이타미 준(伊丹潤)’이 됐다. “아버지는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세계적인 건축가로, 국제인으로 살겠다’고 하셨다”고 유이화 소장은 말했다.

이타미 준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을 받았다.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꼽을 만큼 사랑했고, 포도호텔, 수·풍·석뮤지엄, 방주교회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다. 지난 2011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타계했다.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 ‘수풍석 뮤지엄’ 중 풍(風) 뮤지엄. 적송을 판으로 이어 바람이 드나들게 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 ‘수풍석 뮤지엄’ 중 풍(風) 뮤지엄. 적송을 판으로 이어 바람이 드나들게 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 ‘수풍석 뮤지엄’ 중 수(水) 뮤지엄. 사각 입방체에 제주도 형상의 타원형을 도려내어 하늘을 수면에 투영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 ‘수풍석 뮤지엄’ 중 수(水) 뮤지엄. 사각 입방체에 제주도 형상의 타원형을 도려내어 하늘을 수면에 투영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의 건축물인 제주 ‘포도호텔’.  ⓒ사진가 준 초이 촬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타미 준의 건축물인 제주 ‘포도호텔’. ⓒ사진가 준 초이 촬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타미 준은 똑같이 생긴 직사각형의 현대 건축물을 비판했다. 콘크리트 자재와 대비되는 돌, 나무, 유리, 흙, 금속 등 자연 소재를 사용해 야성적이고도 소박한 매력을 불어넣었다.

데뷔작 ‘어머니의 집’(1971)은 외벽을 유리로 감싸 때론 하늘처럼 푸르게, 때론 태양처럼 금빛으로 빛난다. 이타미 준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축을 맡기며 ‘마음대로 지어라’라고 했는데, 정작 완성된 집을 보고는 ‘이건 안 되겠다’ 했다는 일화가 재미있다. “훌륭한 예술가가 존재하려면 가족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나 봅니다.” 유이화 소장의 말에 좌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옥 구조를 그대로 살려 황토와 벽돌로 지은 ‘온양미술관’, 서울대 도서관이 폐관한 후 허물고 남은 벽돌을 자비로 도쿄까지 옮겨와 사용한 술집 ‘트렁크’, 미끈하고 차가운 느낌의 고층 건물 사이에 돌을 쌓아 올린 ‘M빌딩’ 등도 거장의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고인의 주택 겸 사무실 ‘먹의 집’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본래 재건축할 계획이었는데, 건물과 조화를 이룬 벚나무 두 그루가 땅의 주인 같아서 계획을 바꿨다. 교토에서 공수한 대나무를 훈증해 파사드로 사용했다. 꽃 피고 단풍 드는 벚나무, 점차 색이 변하고 갈라지는 대나무를 통해 “건축도 시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왜 대나무를 쓰냐”는 딸에게 이타미 준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그 변화를 즐길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거장은 평소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겸손했으며 절제된 생활을 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고도, 자신은 22평 규모의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모든 것이 신체에 담긴다. 건축은 신체에서 나오는 행위이고, 신체의 긴장감을 놓치면 건축가의 삶은 끝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늘 꼿꼿한 자세로 앉아 계셨죠.”

치열하게 살면서도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본래 화가를 꿈꿨던 거장은 ‘모노하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곽인식 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곽인식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타미 준도, 이우환도 없다”는 말도 있다. 조선백자에 매료돼 달항아리 등을 수집하기도 했다. 자연과 주변 경관에 은은히 스며들어 빛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미적 가치이기도 했다.

유이화 ITM건축연구소 대표이사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3차 WIN 문화포럼 이타미 준의 건축과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유이화 ITM건축연구소 대표이사가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3차 WIN 문화포럼 이타미 준의 건축과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유이화 소장은 이타미 준의 장녀이자 제자, 동지였다. 이화여대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의 길을 택해 활약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에 ‘이타미 준 뮤지엄’을 마련했다. 오는 11월 개관 예정이다. “부지를 보러 갔는데, 풀숲 사이로 제주에선 보기 힘든 백마 한 마리가 서 있는 거예요. 소름이 돋았죠. 여기인가 보다.”

그가 이끄는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은 이타미 준의 정신적·물질적 근간이 돼 온 한국 전통의 힘이 담긴 건축 정신을 기리고, 토착성과 지역성을 보전하는 건축물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타미 준 뮤지엄을 통해서도 어린이 건축학교, 찾아가는 건축 교육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유이화 소장은 “티하우스, 도서관처럼 온전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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