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독립운동에서의 여성 리더십
[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독립운동에서의 여성 리더십
  • 강정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승인 2022.10.02 09:00
  • 수정 2022-10-10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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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좁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 젠더 통합의 지도력 

 

14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학생들이 여성독립운동가 292명의 초상화를 들고 서대문 형무소를 향해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대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년 8월 14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학생들이 여성독립운동가 292명의 초상화를 들고 서대문 형무소를 향해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대행진’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한국에서 독립운동가로 서훈받은 이들은 2022년 7월 현재 1만7285명이고 그중 여성은 567명(3.28%)이다. 이 여성들이 활동한 지역은 국내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미주에 이른다. 활동 영역은 의병에서부터 일제하 비밀결사, 노동·농민·학생운동, 사회주의 운동, 국외에서는 러시아 혁명운동, 중국의 임시정부와 각지 독립운동, 미주의 독립운동 및 지원활동 등에 이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했고 여성해방과 계급해방을 꾀했다.

조선 후기 내부에서부터 실학 등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고 서세동점의 충격 속에서 국권수호가 눈앞의 과제가 됐다. 한말에는 윤희순(1860-1935) 등이 을미의병을, 영암의 양방매(1890-1986) 등은 정미의병투쟁을 했다. 윤희순은 일제 감점 이후에는 만주로 가 독립군 운동을 지속했다.

일제강점 초 국내에서는 비밀결사운동을 기반으로 3.1운동과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전개됐다. 김마리아(1892-1944)는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모두 관여했다. 김마리아 황애덕 등은 동경여자유학생회 대표로서 2.8독립선언에 참여했다. 준비 과정에서 남자 유학생만의 행사로 몰고 가자 여자유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해 공식적으로 함께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2.8독립선언서에 여학생들의 이름은 없었다. 졸업식도 참석하지 않고 귀국한 김마리아는 자신이 근무했으며 동생과 고모가 있던 광주 수파아여학교를 통해 2.8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상경해 서울과 고향 등지에 이를 돌렸다. 3.1운동이 터지자 김마리아는 2.8독립선언에 참가한 선배세대로서 3월 5일 전문학교 남학생들이 중심이 돼 계획한 학생시위를 ‘남학생들의 운동’이라 명명하며 여학생들에게 단순히 따라서 참가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를 촉구했다. 그는 3.1운동으로 장기간의 구금에서 풀려난 직후였음에도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의 활동은 일회적인 시위와 차원이 다른 여성들이 주체가 된 조직운동이었다. 이 운동으로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해 죽음 직전에 이르러 상해로 망명,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업과 운동을 지속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난 김알렉산드라(1885-1918)는 러시아 페름 등지에서 조선인 통역자로서 노동운동 지도자로서 러시아혁명 이전부터 볼셰비키운동에 관여했다. 이후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장으로서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과 결탁한 러시아 백군에게 잡혀 처형됐다. 그는 러시아 극동에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하고 성장시켜 사후에도 이 지역의 상징적 존재였다.

193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계 여성들은 다수가 침묵하거나 친일적 행보를 보였지만 사회주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해방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활동을 보였다.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이재유의 부인이었던 박진홍(1914-?, 서훈은 받지 못함)은 학생과 노동자 등의 조직활동으로 인해 출옥과 감옥생활을 반복하면서도 남편이나 동료의 감옥생활을 돌봤고 일제 말기엔 망명해 활동을 이어갔다. 서른셋이 될 때까지 감옥에서만 10년을 보냈다. 이재유 사후 1944년 그의 새로운 반려자가 된 국어학자이며 한문학자인 운동가 김태준을 ‘집사람’이라 한 것이나 유영준이 여남평등이라 한 것은 단순히 여성을 강조한 것만이 아니라 여성들의 리더십이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리더십은 한쪽을 복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면서도 현실에 바탕을 둔 강인함에 기초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여성의 굴레가 아직 강력했던 그 시기에 희생을 감내하며 독립운동과 운동가들을 살려낸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젠더통합을 체화한 이 시대의 여신이 아닌가.

*[신화와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칼럼은 전라남도 양성평등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가배울 살림인문학 아카데미  강연의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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