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가 되어야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필자가 성희롱, 성폭력 관련 강의를 할 때 청중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완벽한 피해자”의 모습을 그립니다.

“밤늦은 시간에 젊은 여성이 생면부지의 남성으로부터 위협을 받다 성폭력피해를 입게 되었고, 피해자는 피해과정에서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다가 상처를 입었을 것이며, 피해 직후 울면서 경찰서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였을 것이고, 이후 이 피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울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아는 사이에 의한 성폭력 피해 80%
수사기관에 도움 요청한 경우 5%

그런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실제 국가의 성폭력 실태조사와 각종 범죄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는 대낮에 일어나기도 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서로 아는 사이에 의한 피해가 80%가 넘는 것이 현실이며, 피해 장소는 가장 안전해야 할 집, 학교, 직장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고, 실제 피해 이후 수사기관의 도움을 요청하였다는 비율은 5%조차 되지 않습니다. 현실 속 피해자들은 각자 처해 있는 사정에 따라 피해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하고, 또 모두가 우울한 일상을 보내지도 않습니다. 필자가 만난 현장의 수많은 피해자들 역시 이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완벽한 피해자”에 부합하는 피해자를 만나기란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법원은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이 모두 똑같을 수 없고,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런 행동이나 반응을 하였을 것이라는 소위 “피해자다움”에 대하여도 부정적 판단을 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 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참조). 범행 후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2020. 8. 20. 선고 2020도6965 판결, 대법원 2020. 9. 3. 선고 2020도8533 판결)”는 판결이 대표적입니다.

피해자답지 않다, 정말 피해자가 맞느냐
주변의 비난에 2차 피해 입는 피해자들

성폭력은 범죄로 처벌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죄와 달리 사건 자체, 그리고 피해자에 대해 잘못된 통념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통념은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상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 완벽한 피해자의 상 속에 피해자를 가두게 됩니다. 이 완벽한 피해자 상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답지 않다, 정말 피해자가 맞느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운 모습을 강요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고, 주변으로부터 공격과 비난을 당하는 방식으로 2차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피해를 신고하거나 문제제기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피해자의 신체 안전이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아닌 “정조”를 침해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처벌되었던 우리나라의 성폭력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지 못했던 역사가 깊습니다. 성폭력, 넓게는 여성폭력 사건,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고 피해가 발생한 맥락과 그 본질을 바라볼 수 있어야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시선이 아닌 피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리는 “완벽한 피해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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