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맞고 사는 여자가 어딨어?”

그러다 놀란다.

“아니 이경실이?”

하지만 금방 잊는다. 오히려 이죽거린다.

“요즘엔 매맞는 남자들이 더 많대. 여자들이 너무 사나워졌다니까.”

그러다 또 놀란다.

“아니 김미화가?”

동정도 놀람도 그러나 잠깐이다. 그 다음 이내 등장하는 건 폭력을 쓴 남자에 대한 하해와도 같은 이해심이다. 예전처럼 '여자들이 맞을 만하니까 맞았겠지'라는 말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지만 “남자들이 오죽하면 때렸을까”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 심정 이해할 수는 있다고들 한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남편이 겪는 열등감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상하다. 그렇다면 왜 돈 잘 버는 남편도, 또 사회적 지위가 상당한 남편도 아내를 때리는 걸까. 그건 대부분 술 때문이란다. 술이 사람을 개로 만든단다(개 입장에서 보면 기가 찰 노릇이겠다). 매맞는 아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술 안 먹으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인데 그 놈의 술이 원수란다.

그런데 술 안 먹는 남편도 아내를 때린다. 그건 왜일까. 아마도 아내가 바람을 피웠든지 밥을 빨리 안 차렸든지 해서 남편을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아하, 그러니까 결국 여자들이 매를 청했다는 말이네. 남자 속에 잠자고 있던 폭력을 겉으로 끌어내게 했으니 피해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이군.

가정폭력은 폭력이다

왜 우린 모두 가정폭력에 대해선 공분을 느끼기보다 사이비 심리학자처럼 행세하는지 정말 요지경이다. 여자들이 맞았다는 사실은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왜 때렸을까에 더 관심을 쏟는다.

세상이 이렇게 폭력에 대해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데 어떻게 폭력문화가 사라질 수 있을까. 매맞는 아내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0년이 넘었건만 갈수록 그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폭력 불감증 없어져야

우리 사회의 5대 범죄 가운데 폭력이 85%를 차지할 정도로 폭력이 일상화된 원인은 무엇보다 가정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아니 법 제정 등 사회적 장치는 어느 정도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폭력에 대한 불감증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폭력문화에 길들여져 왔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니? 그거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야지'가 우리네 가정교육의 지침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무지막지했던 선생님의 체벌도 항상 사랑의 매로 정당화되곤 했다. 부모도 교사도 사랑하니까 때리지 무관심하면 때리겠어? 하지만 맞는 쪽의 생각은 다르다. 아, 오늘 이 양반들이 심기가 불편한 날이군. 그리고 확실하게 남자들을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들어 주는 군대라는 괴물. 말하면 잔소리다.

때리는 남자는 가정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맞는 여자는 아이들에게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참고 산다.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입는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된다. 그 아이들이 만들어갈 가정은 또 어떤 모습일까? 5월, 가정의 달이란다. 갈수록 험해지는 이 세상에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뿐이라고? 정말 그렇다면 좀 좋을까.

박혜란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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