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감독군에 가서야 섹슈얼리티 해방 담론 가능해져

영화 속 섹슈얼리티를 통해 한국의 사회상을 분석한 책이 나왔다. 유지나·조흡 등 7명의 필자가 펴낸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생각의 나무)가 그것. 386세대 감독의 섹슈얼리티와 스크린 속 '팜므 파탈(남자를 파멸시키는 악녀)', 소비주체로서 관객의 남성성, 에로비디오의 '호객' 행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주제들이 흥미롭게 분석됐다. 책 속의 논의들을 일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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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속 '팜므 파탈'의 계보를 다룬 글에서는 지식인층 부인의 외도를 다룬 <자유부인>(1956)이 본격적인 '팜므 파탈'영화로 소개된다. 당시 “전후 성역할의 변화, 가부장적 권위의 쇠퇴, 서구적 생활 패턴의 유입,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의 확산이라는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로 인한 불안, 공포, 당혹감을 전적으로 여성의 성적 타락 탓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영화 속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왜곡된 방식으로 그려졌다. '잘살아 보세' '새마을운동' '조국 근대화'의 슬로건이 난무하는 '개발독재' 아래서 타자로 전락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에서 보여진다. 특히 이 영화는 당시 '사모님'이라 불리는 여성들에 의해 더욱 문제시됐는데, 필자는 “그 시대의 타자는 하녀, 식모, 여공, 호스티스 등 주로 여성들로 이루어진 계급계층군”이었으며 “이들이 괴물스런 존재 혹은 팜므 파탈로 돌변하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성을 이용해 계급 상승을 꿈꾸는 순간이었다”고 분석한다.

섹슈얼리티의 해방은 시대가 낳은 공통 경험인 '내면의 저항성'을 영화에 반영한 386세대 감독들의 영화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이재용 감독의 <정사>는 “성에 관한 한 수녀처럼 그려졌거나 벙어리처럼 성적 발언 기회를 박탈당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본격적으로 비교적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내 페미니즘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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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에로 영화들을 '여성 몸의 장르'라 분류한다. 여기서 여성 몸의 장르란 “영화산업의 위기 관리 프로그램과 여성 몸의 상품화를 핵심에 놓는 한국사회 섹슈얼리티 이데올로기가 공모”하는 장이다.

이 글에선 특히 “남성이 남성에게 여성을 대상화하며 말을 거는 방식”인 영화 속 카피들이 거론돼 눈길을 끈다.

“열아홉 순정에 설움만 남은 여자”<삼포 가는 길>(1975), “영자~우리가 만난 여자!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 <영자의 전성시대>(1975), “돌아보면 지난 날은 눈물 자국이지만 오늘밤도 미스 O는 환히 웃는다”(1979), “깊은 어둠 속에 뜨거워지는 여자!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랴”<어둠의 자식들>(1981), “익는다, 불탄다, 그리고 땄다”<산딸기>(1982) 등이 대표적 사례.

특히 이들 영화에 속하는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는 필자에 따르면 여성의 성애모험담 내지 인생 유전담으로 진행되면서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자살이나 우연사, 사랑하는 남자와의 이별이 그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 남성 영웅들의 블록버스터의 흥행 대성공으로 관객 천만 시대에 돌입했다. 한편에선 남성들의 판타지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재현한 영화산업이 판을 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만한 토대부터가 아쉬운 때다.

유지나 외 지음/생각의 나무/1만5000원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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