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할땐 남성보다 더 혹독한 질타

탄핵정국, 진보-보수 이념 갈등, 여성 정치리더들의 급부상, 감성정치 논란 등 그 어느 때보다 격랑 속에서 치러낸 4·15 총선을 통해 17대 국회에 '39'명이란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의원이 입성하게 된다. 지역구 당선자 10명·비례대표 당선자 29명을 통해 여성 정치세력화의 초석을 이루어냈다고 평가되는 이번 총선 결과에 주목, 본지에선 17대 국회 개원 때까지 일련의 관련 특집을 마련한다.

이번 775호엔 그 첫 순서로 전문가들의 좌담회를 통해 4·15 총선 총평과 전망을 해본다.

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문경란 <중앙일보> 여성·NGO 전문기자,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총선여성연대 공동대표) 등 좌담회 참석자들은 이번 총선이 여성계와 여성단체의 이념 성향이 분화되는 하나의 기점이 됐다는 사실을 들어 앞으로 이와 관련한 연구가 여성정치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와 함께 여성이 제도 정치권 안에 진입하는 방식의 문제와 투명한 충원·육성 시스템의 필요성, 17대 여성당선자들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와 남성당선자보다 한층 엄격하게 적용될 잣대, 이를 통한 바람직한 여성 정치인 역할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당위성, 총선으로 부상한 여성 정치리더들의 향후 행보 등 여성 정치세력화를 위한 제반 조건들과 비전에 대해 2시간여 동안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장 소   2004년 4월 19일 여성신문 회의실

  참가자   조현옥 총선여성연대 공동대표
   문경란 중앙일보 여성·NGO전문기자
   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
  진 행  박이은경 편집국장

  정 리  나신아령 기자
  사 진  민원기 기자

       

박이은경(이하 박이): 이번 총선에서 40대와 여성유권자들이 표심을 좌우했다는 것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총선을 치렀다. 각자 현장에서 느꼈던 소감을 한 말씀씩 해주신다면.

문경란(이하 문): 여성계가 이번 총선과정에서 많이 노력하긴 했지만…아쉬운 감이 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100여 명의 여성후보 추천 이후 유권자운동까지 전개하겠다고 했던 당초 의지에 비해선 일관성이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오히려 정치권의 부패정치에 대한 대안집단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다급함이 여성후보들에게 눈을 돌리게 하지 않았나 한다.

박이: 한편에선 이번 총선이야말로 여성계가 시민단체와 연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홀로 서기를 한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제까지의 여성계 선거운동 중 가장 활동이 치열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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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옥(이하 조):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은 사실 여성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여성후보들을 위해선 오히려 지지당선 운동을 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총선에서 여성계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 한편에선 총선여성연대가 여성 정치진출을 위한 제도개선에 주력해 비례대표 여성 50% 홀수순번제 할당 등을 얻어냈고, 한편에선 여성리더 개개인의 모임인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가 자체 기준으로 여성후보 리스트를 작성, 적극적인 지지운동을 전개했다. 여성계로서는 일정 부분 성과를 얻어낸 셈이다.

◀조현옥 총선여성연대 공동대표

김형준(이하 김): 이제 대세는 진보개혁이다. 국민들 중 보수적 성향보다는 진보적 성향이 훨씬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런 사회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들도 이젠 감성에 치우쳐 표를 행사한다는 선입견이 깨져야 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어떤 이념을 갖고 선거와 투표에 임하는 지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박이: 여성계 주도 유권자운동이 부족했다는 것이 좀 아쉬운데, 운동을 늦게 시작한 감도 없지 않다.

조: 총선여성연대에 320여 여성단체가 모이면서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정치성향을 초월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연대를 위해 정치성향을 명확히 잡지 못한 채 두리뭉실하게 갔다고 말할 수도 있다…가령, 탄핵에 대해서 여성연대 안에서 심도 깊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고 성명서도 내지 못했다. 그 같은 논의를 했다면 여성연대가 와해됐을 가능성도 있다…유권자운동은 조직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약비교는 했지만 탄핵정국을 맞아 공약토론회가 무산됐다. 이로 인해 막판 유권자운동이 힘을 잃은 경향이 있다.

박이: 이제는 생물학적 여성이 지지 근거가 되긴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만큼 생물학적 연대보다는 이념적 연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은데, 여성 정치세력화와 연대라는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문경란 정계와 여성계 힘모아 여성정치엘리트 키워내야

문: 하나의 발전이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항상 획일화된 목소리로 여성이 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분열된 것처럼 보는데, 이건 아니다. 여성의 영향력과 그 집단력,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게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박이: 흔히 말하는 여성계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제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문: 여성계도 단체별로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단체별 성향에 대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영향력,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향에 따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성향을 알고 받아들일 것이다.

박이: 이번 총선에선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정치 담론이 풍성했다. 그러나 취재기자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지역구 여성할당인 여성광역선거구제나 양성평등선거구제 등에 대해 정치권 일부 여성의원들을 중심으로만 논의가 전개되고, 정작 여성계 자체에서 논의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들 아이디어 제도들이 결국 사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 민주당에서 처음 여성광역선거구제안이 발의됐을 때 여성계는 반대했다.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이 우선 목표였고, 여성광역선거구제는 차선책이었다. 정계 쪽에선 다른 당에서 이 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안심하고 내놓은 안이고, 시민사회단체는 선명성에 집중하느라 이 안에 대해 편법이라고 비난했으며, 언론은 시민단체에서 안 좋다고 하니 안 좋은 안인가보다 하고 반대했다. 간만에 민·관·언 3박자가 맞아 폐기 처분된 셈이다(일동 웃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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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성광역선거구제에 대해선 무엇보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편견, 대중적인 이해와 홍보가 부족했다고 본다. 남성뿐 아니라 일부여성들마저 공짜 먹기라고 생각했다. 시대착오적이고 못난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대놓고 여성할당제에 대해 비난은 못할 정도까지 인식은 변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부당 경쟁을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지금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등등의 말은 들렸다. 결과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없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본다.

▶문경란 중앙일보 여성·NGO 전문기자

박이: 이제 39명의 여성들이 17대 국회에 들어가니, 16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여성정치 지원방안들도 충분히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30%엔 아직 못 미치지만 13%라는 여성의원 규모가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한다.

조: 사실 16대 국회에선 6%도 채 못 되는, 워낙 작은 여성의원 수가 문제였다. 여성정치 혹은 여성정치인을 일반화시킬 수 없었다.

문: 여성정치인에 대한 인지도도 낮았다. 일반 독자, 그것도 어느 정도 고학력의 독자에게 아는 여성정치인이 누구냐고 물어봐도 추미애, 박근혜 의원 정도의 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고, 호주제 폐지 법안을 발의한 이미경 의원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조: 언론의 문제도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만 거론될 뿐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은 다루지 않는다. 정치권에 정치엘리트가 어떻게 충원되는지 알려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충원과정을 투명하게 오픈해야 한다.

김: 당연하다. 충원과정이 잘못되면 국회가 엉망이 될 것은 자명하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충원과정을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숙 의원 등 우수한 의정활동을 보였던 의원들이 이번 공천과 경선과정에서 떨어지면서 국회의 효율성도 함께 떨어지는 것이다.

문: 의정활동을 잘하면 유권자들의 평가도 잘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론 이게 잘 안 되고 있다. 시스템이 갖춰지면 현실정치에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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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거법과 현실정치가 따로 놀면 안 된다. 이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룰을 모른 채 반칙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과 같다. 미국의 경우, 1년 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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