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술시중 강요는 성희롱 아니다”

법원이 회식자리에서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도록 한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2부(재판장 한강현 부장판사)는 13일 초등학교 교감 김모(54)씨가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성희롱 결정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5월 김씨는 남녀차별개선위로부터 여교사로 하여금 교장에게 술을 따르도록 권한 행위에 대해 '성희롱'으로 판정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김씨의 언행은 성적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상사로부터 술을 받은 부하직원에게 답례 차원에서 술을 권하라는 취지였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용인될 수 없거나 선량한 풍속 혹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식 자리의 다른 여교사들은 김씨의 언행에 대해 성적인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성명서를 내고 “직장 내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은 '피해자의 관점'이 주요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재판부가 피해자의 입장보다 가해자의 의도나 제3자의 느낌을 주요한 판단 근거로 채택한 것은 성희롱 사건의 기본적인 관점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법원의 성차별 불감증이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조장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교조 박영란 여성위원장은 “학교 관리자가 술시중을 강요해 교원의 권위를 모독하고 굴욕감을 준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판사들이 성평등교육을 받지 못한 소치로 보고 법원과 여성부에 법조인에 대한 교육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사자인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는 항소를 고려중이다. 여성부 김태석 차별개선국장은 “성희롱 사건의 경우 명확한 기준이 없어 항소를 통해 대법원까지 가서 판례를 남길 계획”이라며 “판결문을 받아본 후 항소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는 이미 2건의 성희롱 사건과 관련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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