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누드 당장 중지하라 
‘얼’빠진 누드 당장 중지하라 
  • 임인숙 기자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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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이승연의 누드 사진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2일 이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팔라오 섬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누드 사진을 촬영했으며, 상업적 목적은 있었으나 ‘위안부’여성들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촬영 내내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영상물의 판매 수익금을 ‘위안부’여성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누드와 ‘위안부’여성이라는 말도 안돼는 조합에 일반인들은 물론 당사자인 ‘위안부’여성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132명과 한국정신대문제대핵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나눔의 집,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모임, 통영, 거제 시민모임, 부산시민모임은 지난 12일 성명서를 발표해 이승연의 일본군 ‘위안부’테마 프로젝트가 일본군 ‘위안부’피해 여성을 또다시 성의 상품화로 울리는 상업주의라 강력히 비난했다.



성명서는 이씨의 누드 촬영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그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으나,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의 나열"이며 "누드를 통해 과거 일본군의 성노예 피해자 ‘위안부’문제를 다루면서 한일 관계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비판했다.



비밀리에 추진되며 적당히 호기심을 유발했던 그의 누드와 상품으로 유통될 영상물 따위는 애시당초 관심 밖이다. ‘나라고 못 찍나’혹은 ‘젊은 몸’에 대한 질투심이 발동한 행태라 치부하거나 그 욕망에 편승한 상업주의의 그렇고 그런 전략쯤으로 무시해 버릴 수 있다.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누드 행렬에 누구 하나 가세한다고 해서 가타부타 문제를 삼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씨가 내놓은 누드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한다. 탤런트라는 위치를 떠나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는 ‘위안부’여성들의 경험과 아픔을 그런 방식으로밖에 바라볼 수 없는가. 그 또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온갖 피해를 볼 수 있는 여성이고 똑같이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며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역사의 뒤안길에서 반세기 동안 침묵해야 하는 약자가 될 수 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무언가 엄청나게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일본군 ‘위안부’여성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눈물 흘리며 보았던 감상과 자신의 누드 작업이 놓인 맥락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한국정신대연구소가 발간한 <해외거주 일본군 위안부 실태조사> 자료집 표지에서.






네티앙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으로 찍게 됐다는 사진은 ‘위안부’여성, 즉 성폭력 피해 여성을 에로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한 모습, 반쯤 풀어헤쳐진 저고리, 등을 보이며 슬픈 표정을 짓는 얼굴, 치마와 저고리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알몸, 심지어 고문 기계 앞에 서 있는 모습까지. 이것이 ‘위안부’여성들의 아픔과 복수, 희생, 극복의 과정을 사진으로 표현해 그들을 위로해 주고픈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란다. 그것도 불과 반세기 전 똑같은 장소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왔던 ‘위안부’여성들을 재현하는 모습이란다. 이는 역사로 위장한 천박하고 무례한 상술에 불과하다. 그 상술에 놀아난 욕망은 또 무엇인가. 상업성을 옹호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그의 마인드가 참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한다.



당분간 누드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나없이 벗고 찍는 마당에, 어떻게 하면 좀더 자극적으로 예술성을 살려 벗을 것인가, 혹은 벗길 것인가를 고민하며. 누가 벗었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우리 사회의 관음증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시선들이 여전히 군침을 흘리며 지켜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포르노 물에 섞인 누드에 사람들은 이미 조금 무감해지고 흥미를 잃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유용한 ‘특별함’이 피해 입은 여성들의 아픔을 되살리고 이를 분노로 화하게 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차라리 그냥 누드를 찍어라. 벗고 보여주길 원하는 그 욕망에 제동을 걸 이유가 없다. 그럴 만큼의 애정도 없다.



팔라오 섬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여성들의 희생과 복수, 극복을 보여주는 대서사’의 이름으로 생존해 있는 ‘위안부’여성들의 인격과 존엄함을 가차없이 짓밟고 있다. 그들의 피맺힌 아픔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내고 있다. 이 ‘얼’빠진 누드 사진을 동영상으로 상품화하는 일을 계속 진행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힘겹게 걸어 온 생존자들, 그 많은 여성들의 노고와 희생을 이렇게 단 한 컷의 사진으로 조롱해선 안된다.






임인숙 기자 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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