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이경 대중음악작사가
어머니 하윤순 씨

이경 작사가와 어머니 하윤순씨. ⓒ이경
이경 작사가와 어머니 하윤순씨. ⓒ이경

“<이경>작사가님! 이름이 예명이시죠?” “본명 맞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30년이 되는 동안, 숱하게 들었던 통성명 상황이었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으로,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나란 사람을 세상에 꼿꼿이 세우셨다.

80이 다 되신 엄마... 57년 전 그 시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던 집안의 산골 소녀가, 외할머니가 정해준 한 남자와 결혼하는 날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남편 될 사람의 첫 얼굴을 마주했고, 그 남자가 첫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였다. 그렇게 순박한 엄마가 세상에 명예롭고 기억될 사람이 되라고, 1남2녀 자식들의 이름을 각각 특이하게 지으셨다고 한다.

엄마를 떠올리면 <섬기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 없이 아버지를 섬겼고, 자식들을 섬겼고, 나이와 상관없이 주변인들도 섬겼고, 살아있는 생물, 화초 등 심지어 엄마 품안에 들어온 물건까지도 아끼고 섬겼다.

하윤순씨 결혼 사진. ⓒ하윤순
하윤순씨 결혼 사진. ⓒ하윤순

가난을 벗어나기까지 엄마가 가진 꿈을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했는지,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런지... ‘주어진 환경은 이기는 것은, 생각의 깨달음이 더 크면 된다’는 자신만의 화두를 정해두고, 마음을 다지고 다지셨던 엄마. 아이들을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며, 내가 한 살이 채 되지 않을 때 올라와 낯선 땅에서 자리 잡기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가녀린 여자가 버텨내야 했던 세월이, 참으로 안쓰럽고 미안하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랬다. 연고가 없는 동네 장애 할머니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24년동안 모셨고, 약속대로 49재도 지내주었으며, 지나가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물 한잔이라도 꼭 대접해드렸다. 동네 할머니를 가족처럼 모셨다고 효부상을 받으신 엄마였다. 

하윤순씨. ⓒ이경
하윤순씨. ⓒ이경

 

그렇게 중년을 보낸 엄마는 뼈 마디마디 파고들었던 전쟁 같은 삶에서 여유로운 삶이 될 무렵 이제 꿈을 이루고 싶다고, 젊은 날 마무리하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고 하셨다.

61살 환갑이 되시던 그해, 환갑기념으로 엄마 손을 꼭 잡고, 정규 중학교에 다시 입학을 시켰다. 만학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인간이 늙어감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방법인 것을....

그날이 그 순간이 엄마는 꿈만 같았고, 너무 행복했다 하셨고, 나 역시 너무나도 기뻤다. 한문 자격증 1급까지, 영어, 음악 등등.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하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 약속 어김 없이 학교를 다니셨다. 너무 자랑스러운 엄마. 그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합격했으나 대학은 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시며 멈췄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 중한 지병이 진행 중이셨고, 엄마는 다시 아버지를 섬기는 삶에 매진하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자식들에게 단 한 번도 어떠한 것을 강요한 적이 없으셨다. 스스로 먼저 보여주시면, 우리 남매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 엄마의 배움은 학교를 마무리한다고 멈추진 않았다. 학교 졸업 후 하모니카를 배우셨고, 엄마의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되었다. 간간이 들려주는 멜로디는 여자의 일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2020년 4월 아버지께서 하늘에 별이 되실 때까지 엄마와 나는 늘 다짐처럼 약속했던 것이 있다. ‘아버지께 최선을 다하고, 나중엔 울지 말자’고. 18년이란 긴 지병 시간에, 9년을 기억을 지우는 병을 앓으시면서도, 항상 밝으셨던 아버지. 그 중심엔 엄마의 강한 선함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엄마, 아빠가 동시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 삶을 통틀어 가장 힘겨웠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쓴 노래 가사가 얼마 전 발표 됐다

엄마를 닮았구나.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엄마를 닮았구나. 눈가에 내린 주름도/

모든 걸 닮았구나. 세상을 사는 모습도/ 눈물도 웃음도 입맛까지도

엄마가 그랬었지. 나처럼 살지 말아라/ 엄마가 그랬었지. 남 하는 것 다 해봐라

여자라 참지 마라 어떠한 순간에도/ 언제나 엄마는 너의 편이라고

 

엄마를 닮았구나. 나이가 들어 갈수록/ 엄마를 닮았구나. 아파도 참는 모습이

별걸 다 닮았구나. 용서에 넉넉해지고/ 예쁜 것 앞에선 미소를 짓고

엄마가 그랬었지. 내 나이 되면 안다고/ 엄마가 그랬었지. 철 들면 이별이라고

가진 것 그보다 더 몇 천 배 더 준 사랑/ 엄마가 지어준 밥이 먹고 싶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부를수록 먹먹한 그 이름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제발 아프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기처럼 점점 작아지는 울 엄마

다음 세상엔 그땐 엄마가/ 나의 딸로 태어나주세요

<유지나 노래 '모란'(어미 母, 밥 지을 糷)>

내 인생. 내 글과, 가사에는 지난날 엄마의 <섬김> 모습이 나도 모르게 젖어있는 것 같다. 자신을 낮추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그 마음. 선한 마음과, 그 마음을 행할 때, 강한 선함이 다시 발복되고, 그 공덕이 고스란히 우리 자식들에게 내려와, 행복과 긍정, 선함이 다시 반복 될 수 있게 하는 삶을 여전히 진행하며 살고 계신 엄마. 그리고 위대한 내 어머니...하윤순!

사랑하는 엄마. 다음 세상엔 그땐 엄마가 나의 딸로 태어나 주세요

이경 대중음악 작사가
‘피아노’(조성모), ‘떠나지 마’(이승철), ‘러브 바리스타’(박효신), ‘용서 못해’(드라마 ‘아내의 유혹’ 주제가) 등 300여곡 작사. 시집 『그대는 말이 없어』 등 10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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