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여제’ ‘마녀’ 아닌 운동 좀 아는 ‘노는 언니’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여제’ ‘마녀’ 아닌 운동 좀 아는 ‘노는 언니’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1.08.27 21:06
  • 수정 2021-08-27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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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채널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E채널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E채널
E채널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E채널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주면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 ‘언니들’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논다. E채널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연출 방현영 CP·박지은 PD, 작가 장윤희)가 펼쳐놓은 놀이판에서 스포츠계를 주름잡던/는 운동 좀 하는 그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재미 속에 새로운 여성 운동선수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미디어가 보여줬던 여성 운동선수들의 모습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박세리, 김연아, 김연경 선수처럼 세계적인 기량을 뽐내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은 국민적 영웅이자 전설로 그려졌다. 동계·하계 올림픽처럼 세계 대회에서 걸출한 성적을 얻은 선수들도 ‘국민 여동생’이나 ‘여제’와 같은 호칭으로 조명 받으면서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주기별로 반복되어왔다. 미디어는 출중한 능력과 더불어 최고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겪은 역경과 극복 과정에 초점을 맞추곤 했다. 이들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비범한 영웅이었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고민은 미디어가 반기는 이야깃거리는 아니었다.

여성선수 전면에 내건 예능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미디어의 편향성은 친밀감과 예능감을 보여줄 기회를 제한하면서 이들의 방송계 진출의 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노는 언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출연진 전원이 여성 운동선수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없었다. 간혹 특정 소수의 여성 운동선수들이 일회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게 허락된 길은 은퇴 이후 스포츠 경기 해설자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남성 운동선수들의 방송인으로의 성공은 흔하지 않지만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강호동, 서장훈, 이만기, 허재, 안정환 선수를 비롯한 많은 남성 운동선수 출신들이 예능에 안착하여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여 스포테이너로 활약하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기존 미디어들이 운동선수들을 성별에 따라 달리 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포츠하면 떠올리는 힘, 스피드, 경쟁, 승부, 역동성, 적극성과 같은 이미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적 특징으로 분류되어왔다. 애초에 운동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잘 어울리는 영역으로 생각되었고, 이에 반하는 여성 운동선수에 대해 미디어는 가부장사회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웠다. 나이가 어린 선수들은 ‘여동생’으로 호칭하며 위에 열거한 운동선수 이미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편안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바꾼다. 뛰어난 성과를 낸 여성 선수들은 보통의 사람과 다른 비범하고 초월적인 영웅이나 전설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기존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존재로 만들곤 한다.

지지와 응원, 위로와 성장

여전히 여성 스포츠 스타들은 ‘국민 여동생’, ‘여제’, ‘전설’, ‘영웅’의 이미지로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노는 언니’는 편안함과 비범함을 잘 반죽해 성별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재미있고 신나게 노는 ‘운동 좀 하는 언니’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 박세리를 비롯해 자신들의 종목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그들은 자기의 종목에서 최고의 위치에 서기 위해 갖은 고난을 이겨낸 롤모델이 되기도 하고, 승부욕이 넘치는 카리스마를 지닌 운동선수였다가, 때론 수다스러운 언니가 되는 등 일상의 모습부터 운동선수로서의 모습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운동선수로서 자신의 종목과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는 진지하다. 하지만 새로운 종목의 선수를 만나 운동을 배우고 경쟁할 때는 상대방과 운동 종목에 대한 존중과 함께 승부욕이 넘치면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때 만능 스포츠우먼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자신 종목 이외에는 ‘구멍’으로 전락하는 등 기대와 어긋난 허당미를 지닌 유쾌한 면모도 함께 그려지면서 스타와 영웅에서 친밀한 존재로 가까워진다. 또한 그들은 개인 혹은 팀별로 실력을 겨룰 때에도 시기나 질투로 상대를 깎아 내리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깨끗한 매너와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인내해야만 했던 운동선수로서 갖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향하는 지지와 응원, 위로와 성장은 이상적인 자매애가 구현되는 것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스포츠를 다루는 방식은 변화를 겪고 있다. 올림픽 메달 색깔과 개수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국가대표선수들의 개인의 노고에 관심은 짙어졌다. 또한 미디어 속 올림픽 국가대표들은 힘을 걷어내고 유쾌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경향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 운동선수들이 제대로 혹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여전히 부족하다. ‘노는 언니’는 지금껏 없었던 여성 운동선수를 전면에 내세운 스포츠예능이라는 점에서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과연 여성 운동선수들이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이 깔아준 놀이판은 운동 좀 하는 언니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이곳에서 여성 운동선수의 유쾌한 전설이 새로 쓰여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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