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의 마음대로 책읽기] ‘하찮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의 굿, ‘뒷전’
[박선이의 마음대로 책읽기] ‘하찮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의 굿, ‘뒷전’
  • 박선이기자 sunnypar@naver.com
  • 승인 2021.08.22 08:24
  • 수정 2021-08-22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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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의 주인공』황루시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김금화만신을 위한 진오기굿에서 신딸이 아기를 낳다 죽은 하탈귀를 놀고 있다.  ©황루시
김금화 만신을 위한 진오기굿에서 신딸이 아기를 낳다 죽은 하탈귀를 놀고 있다. ©황루시

부산 기장에서 별신굿을 본 적이 있다. 이틀 동안 요란한 굿 다 파한 줄 알았는데, 악사도 없는 순서가 있었다. 파마머리 짜글짜글한 할머니들이 5000원, 1만원 복채를 냈다. 수더분하고 넉넉하게 생긴 무당이 할머니들 한 분 한 분께 복을 빌어주며 굿을 마무리했다. “우야든동 아프지 마시고, 무릎 튼튼해서 맘대로 다니시고…” 사설을 듣는데 괜히 눈물이 왈칵 났다. 이런 위로 한 마디에 할머니들은 시큰한 무릎을 감싸 쥐며 또 한 세월을 견디시겠지.

그 굿판이 ‘뒷전’이라는 것을 민속학자 황루시 전 관동대 교수가 새로 펴낸 『뒷전의 주인공』(지식의날개 펴냄)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뒷전은 가장 마지막에 하는 굿이다. “몇날며칠 무속이 신앙하는 여러 신을 모두 대접한 뒤 철상으로 하고 굿 청 밖으로 나와 떠도는 잡귀잡신을 풀어먹이는 의례”라고 황 교수는 설명한다.

뒷전의 주인공은 온 집안을 관장하는 성주신이나 무병장수를 비는 칠성신, 아기를 점지해주는 삼신 같은 떠르르한 신들이 아니라, 아기 낳다 죽은 하탈귀, 억울하게 스스로 세상을 버린 자결귀, 자식 없이 죽은 무주고혼 같은 ‘하찮은’ 존재들이다. “평생 차별받고 무시당하면서 사는 장애인이나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비참한 죽음을 당한 민초들, 오로지 여자로 태어났기에 평생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위로하는 자리가 뒷전이다.

『뒷전의 주인공』황루시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뒷전의 주인공』황루시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뒷전에서 대표적인 약자는 여성이다. 잡귀 가운데서도 아이 낳다 죽은 하탈귀는 가장 비참한 모습이다. 바느질거리를 허리춤에 챙기고 아기를 찾아 헤매는 듯 허위허위 걸어가는 산발한 여자는 이승에도 저승에도 들지 못하고 떠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잡귀가 된 자결귀는 고된 시집살이라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 많은 여인의 죽음을 담고 있다. 여성이며 장애인인 경우는 겹겹의 고통이 더해진다. 어머니로도 아내로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살아온 ‘곱추’여성을 춤으로 표현하는 무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춤추는” 해방을 뒷전을 빌어 실현한다. 이들이 겪은 고통을 위로하는 무녀의 사설은 뒷전에 참여한 구경꾼(대부분 여성들)들에게 자기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동해안 별신굿의 과거(科擧)거리는 과거시험에 실패한 자결귀가 주인공.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아픔을 기막히게 드러낸다. 과거시험 보러가야 하는 남자는 여비가 없다. 그런 그가 “집에 가면 마누라가 다섯”이라고 자랑한다. 하나는 깔고 자고 하나는 덮고 자고 하나는 안고 자고 하나는 베고 잔다. 남은 하나는? “친구 오면 기마이 쓸라고.” 1972년에 채록한 이 텍스트는 당시까지도 남아있던 축첩 전통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넘어서 힘든 삶을 유머로 풀어내고 또 성적 에너지를 뚜렷하게 담아낸 것은 골매기할매거리.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서 ‘아래’가 좋지 못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 여성은 딸을 열둘 낳았는데 정월이 이월이 삼월이 이렇게 열두달 이름으로 불렀다. 이 딸들을 모두 “치웠는데” 시집보낸 곳이 “아가리 큰 데(대구)” “호양질(하양)” “범 물어(범어)” “찔려(찔레)” 갔다. 저자는 이러한 ‘말장난’ 속에는 딸들이 어딘지 위험한 곳으로, 위협적인 방식으로 갔다는 느낌이 들어있다며 “이름 없는 수많은 딸들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낯선 환경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역사의 서술”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뒷전은 비극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울고 웃는 굿판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해산하는 장면에서 같이 힘을 주고, 시집살이 못이겨 목숨을 버리려는 여성에게 묘책을 일러주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의 모순을 직면하는 힘을 얻는다. 저자는 이를 ‘여성들의 연대’라고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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