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짧은 소리‧애교 말투 그만... 언어 생활도 ‘탈코르셋’ 시작
혀 짧은 소리‧애교 말투 그만... 언어 생활도 ‘탈코르셋’ 시작
  • 이하나·진혜민 기자·최예리 인턴기자
  • 승인 2021.07.30 07:50
  • 수정 2021-07-29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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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 유아어 거부 움직임
일부 여대·커뮤니티 아예 ‘금지’
언어는 권력…‘주도권’ 찾자는 취지
ⓒ원일 일러스트레이터
ⓒ원일 일러스트레이터

언어에도 ‘코르셋’이 있다. 최근 20대 여성들은 어리광부리는 말투를 일컫는 ‘애기어(유아어)’와 완곡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쿠션어’같은 ‘말투 코르셋’에서 벗어나자는 ‘탈(脫)코르셋(탈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여성 스스로 말투나 화법에 담긴 성별 위계를 벗자는 것이다.     

익명 “1학년잉데요...전과해야 할 것 같네요ㅠ 무조건 경영학과 가고 싶은데 인기학과는 전과가 어렵겠죠?ㅠ”

 

익명1 “노력하면 안 될 일은 없죠. 그리고 불필요한 퇴행어 자제해주세요”

대학 새내기인 A씨는 최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 평소 쓰던 말투로 글을 올렸다가 “퇴행어를 자제해달라”는 댓글을 받았다. 퇴행어란, 성인이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 온라인 신조어다. ‘말끝에 ‘ㅇ’ 받침을 붙여 ‘~했어용’이라고 애교 섞인 어투, 문장마다 눈물(ㅠ) 표시를 다는 어리광부리는 식의 말투를 애교 섞인 어투를 일컫는다. ‘애기어’가 대표적이다.    

‘여자어’ 자조 섞인 비판에서 시작

서울 소재 모 여대 에브리타임 게시물을 재구성한 이미지.
서울 소재 모 여대 에브리타임 게시물을 재구성한 이미지.

완곡하고 애교 있는 말은 ‘여자어’라고 불렸다. ‘남자어’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라고 했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선 ‘여성의 말에는 숨겨진 본뜻이 있다’며 ‘여자어 분석’을 했고 여자 아이돌에게 ‘애교’를 강요했다. 혀 짧은 소리에 어리광부리는 듯한 태도를 일컫는 애교는 어린 여성들의 매력이자 무기로 여겨졌다. 여성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애교를 부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20대 여성들의 ‘말투 탈코’ 움직임은 이 여자어, 애교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과 조롱에서 시작됐다. 이 움직임의 중심엔 여자대학교 에브리타임과 여성 회원이 다수인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가 있다. 

일부 여대 에브리타임은 이용자가 애기어를 사용하면 금세 “퇴행어 사용은 지양하자”는 댓글이 달린다. 완곡하게 말하는 화법을 일컫는 ‘쿠션어’도 지양하자고 한다. ‘글쎄‘, ‘뭐랄까’, ‘괜찮으시다면’, ‘죄송하지만’, ‘바쁘시겠지만’ 등 본론 시작 전 문장 맨 앞에 붙이는 표현을 가리키는 쿠션어는 학계에서는 ‘울타리어(hedge)’라고 부른다. 공손함을 나타는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요청을 하거나 거절을 할 때 흔히 쓴다. 문제는 모호한 표현이기 때문에 화자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될 위험이 있다. 

지난해 9월 동덕여대 학보사가 진행한 쿠션어와 애기어 사용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7%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문제 없다”는 반발도 있지만 애기어를 지양하는 커뮤니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여초 커뮤니티 홈페이지 캡처.
여초 커뮤니티 홈페이지 캡처.

회원 18만명의 한 여초 커뮤니티는 아예 가입 규정에 ‘애기어 금지’를 못 박았다. 가입자 8만명 규모인 또 다른 여초 커뮤니티는 전체 공지사항에 ‘코르셋 애기어 금지’를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받침에 ‘ㅇ’ 붙이기(예: ~했어용)와 혀 짧은 발음(예: 해떠(했어))을 쓰지 말자고 했다. 

애기어, 아예 안 쓰기부터 선택적 쓰기까지 다양

남녀공학에 다니다 올해 여대로 편입한 B(24)씨는 일상에서도 애기어 사용을 최대한 지양한다. B씨는 “편입 후 에브리타임에서 평소 말투에 대한 문제를 깨달았다”며 “온라인에 글을 쓸 때나 메신저를 사용할 때뿐만 아니라 현실 말투도 바꿨다”고 했다. 이어 “말투가 달라지자 주변에선 ‘무섭다’, ‘화났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며 “친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간혹 애교 섞인 언어 습관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말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9년 여대에 입학한 C(23)씨도 애기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C씨는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후 애기어에 대해 기괴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성인 여성이 자처해서 유아처럼 퇴행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문화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다”고 했다.

또 다른 여대에 재학 중인 D(23)씨는 “애교 섞인 말투는 여성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른 일종의 생존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애기어 금지 ‘이모티콘’도 등장

카카오톡 이모티콘 캡처.
카카오톡 이모티콘 캡처.

카카오톡 이모티콘에는 애기어 금지 이모티콘도 등장했다. 해당 이모티콘에는 ‘애교를 거절합니다’, ‘나의 꿈은 애기어 청정구역입니다’, ‘정중히 말하겠습니다 애기어를 멈춰주세요’, ‘꼭 애기어를 써야 편안하신가요?’, ‘죄송합니다만 애기어 보기가 힘드네요’ 등의 문구가 담겼다.

“유아어는 권력 관계에서 발생” 

언어는 권력이다. 말투와 화법에는 관계에서의 역할과 위계 및 서열, 권력관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애기어는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라며 “‘귀엽다’는 것은 귀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귀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귀엽다’고 하면 무례함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서비스업 노동자인 ‘을’이 고객인 ‘갑’에게 서비스 이상의 ‘감정노동’을 요구받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심유경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은 “여성들은 친밀감이라는 정서적 이유 또는 남성 중심의 사회 속 발화 과정에서 애기어같은 표현을 사용하고자 할 수 있다”며 “최근 20대 여성들에게서 쿠션어와 같은 울타리어나 유아어의 사용을 지양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여성들의 부드러운 언어 사용의 원인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찾고,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남성들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어 “울타리어가 표현을 애매하게 만들기도 하는 만큼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울타리어의 과도한 사용은 지양하는 게 좋겠다”며 “다만 무조건적인 배제보다는 과도한 사용을 지양하고 언어 사용 환경에 맞춰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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