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 키우는 여성들, TV예능 전면에 등장
‘이혼·한부모 = 실패자·피해자’ 편견 깨고
다양한 가족·주체적 여성 묘사 주목
여성이 주 양육자로 등장하거나
‘이혼 후의 삶’을 그린 예능 늘 전망

‘비혼모’ 사유리, ‘싱글맘’ 조윤희, 김현숙, 김나영, 채림.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들이 미디어 전면에 등장했다.  ⓒ여성신문
‘비혼모’ 사유리, ‘싱글맘’ 조윤희, 김현숙, 김나영, 채림.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들이 미디어 전면에 등장했다. ⓒ여성신문

‘비혼모’ 사유리(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싱글맘’ 조윤희, 김현숙, 김나영, 채림(JTBC 예능 ‘내가 키운다’).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들이 TV 예능 프로그램 전면에 등장했다. 여성 스타들의 이혼이나 ‘나홀로 육아’ 고백은 새롭지 않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을 전면으로 다룬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둘 등장해 호응을 얻고 있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정상가족’ 바깥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여성들, 일과 육아 모두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공감과 지지를 얻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가구 7.3%는 한부모 가구
77.6%는 이혼 가정...51.6% 모자가정
11% “남들 시선 두려워 한부모임을 숨겼다”

“숨고 싶었어요.” 이혼 후 신우(6세), 이준(4세)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나영 씨는 9일 JTBC 예능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서 털어놓았다. “그런데 숨을 수 없잖아요.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용기를 낸 거죠. 이겨내야 하니까.” 

이혼 후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나영 씨는 9일 JTBC 예능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서 “숨고 싶었지만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용기를 냈다”고 털어놓았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이혼 후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나영 씨는 9일 JTBC 예능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서 “숨고 싶었지만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용기를 냈다”고 털어놓았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김나영씨 같은 한부모 가구가 전체의 7.3%(152만9000 가구)에 이른다(통계청, 2019). 한부모 가정의 77.6%는 이혼 가정이다. 이혼하고 엄마와 자녀가 함께 사는 경우(51.6%)가 가장 많다(여성가족부, 2018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

우리나라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웃돈다.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9위, 아시아 1위다. 지난해 이혼 건수는 10만7000건, 인구 1000명당 2.1명이 이혼했다고 볼 수 있다(통계청, 2020).

그래도 이혼 가족, ‘한부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뿌리가 깊다.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홀로 아이 키우는 사람 10명 중 1명은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동네나 이웃 주민에게 한부모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동네나 이웃 주민(17.4%), 학교나 보육시설(17.2%), 가족과 친척(16.5%) 등으로부터 차별을 겪기도 한다.

이혼하고 딸 로아(4)를 혼자 키우는 배우 조윤희 씨도 ‘내가 키운다’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고백했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이혼하고 딸 로아(4)를 혼자 키우는 배우 조윤희 씨도 ‘내가 키운다’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고백했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혼자’라는 부담감도 크다. 이혼 후 아들 하민(7)을 홀로 키운 지 7개월째인 코미디언 김현숙 씨, 지난해 이혼하고 딸 로아(4)를 혼자 키우는 배우 조윤희 씨도 ‘내가 키운다’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고백했다.

“누구나 아이가 있으면 그 결정(이혼)이 쉽지 않지만, 저는 하민이를 잘 키워야 해서 한탄할 시간이 없었어요. 저는 가장이고, 돈을 벌어야 해요.” 김현숙씨는 아이의 성씨도 전남편 성씨에서 자신의 성 김씨로 바꿨다. “혼자 키워도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저 혼자 다 책임져야 하니까 부담이 있고요. 더 잘해야지 하고 생각해요. 다른 엄마들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주관으로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요.” (조윤희 씨)

‘한부모’가 소외되고 결핍된 존재, 개인의 능력으로 일과 육아 모두 풀어나가야 하는 존재라는 편견은 옛말이다. ‘내가 키운다’는 여성 연예인들이 가족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혼자 또 함께’ 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혼 후 아들 하민(7)을 홀로 키운 지 7개월째인 코미디언 김현숙 씨는 ‘내가 키운다’에서 가족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이혼 후 아들 하민(7)을 홀로 키운 지 7개월째인 코미디언 김현숙 씨는 ‘내가 키운다’에서 가족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JTBC 예능 ‘내가 키운다’ 방송화면

김현숙씨와 아들 하민이는 경남 밀양의 친정에서 살고 있다. 하민이는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잘 먹고 밝고 기운 넘치는 아이로 자랐다. 김현숙씨의 친어머니도 이혼 후 삼남매를 홀로 키웠고, 지금은 재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밝혔다. 조윤희씨는 친언니와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함께 살지 않아도 아이가 아빠의 사랑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아이 앞에서 아빠 얘기도 스스럼없이 꺼낸다. 

‘이혼·한부모 = 실패자·피해자’ 편견 깨고
다양한 가족·주체적 여성 묘사 늘어

이렇듯 미디어가 재현하는 한부모는 ‘실패자나 피해자’라는 편견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정상가족’ 담론에서 이탈하고,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비혼 출산할 권리’ 논쟁을 촉발한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 씨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11월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 ‘젠’을 낳은 그는 “자연임신이 어렵고 시험관 시술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말에 자발적 미혼모가 되기로 했다”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서 결혼하는 것보다 낫다”고 KBS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국에서 비혼모가 시험관 시술을 받기가 어려웠다며 ‘비혼 출산할 권리’도 주장했다. 

KBS 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사유리와 아들 젠 ⓒKBS 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화면
KBS 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사유리와 아들 젠 ⓒKBS 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화면

반발 여론도 일었다. 사유리가 KBS 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출연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에 KBS 앞 규탄 시위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KBS는 “사유리의 ‘슈돌’ 출연이 비혼 출산을 장려한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기고 있고, 사유리 가족 역시 그중 하나”라고 일축했다. 사유리씨는 일하며 아이 키우느라 바쁜 일상을 방송 프로그램과 개인 SNS 계정을 통해 공유하며 응원을 얻고 있다.

여성이 주 양육자로 등장하거나, ‘이혼 후의 삶’을 당당히 예능 콘텐츠로 가져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늘어날 전망이다.  ⓒJTBC/MBN
여성이 주 양육자로 등장하거나, ‘이혼 후의 삶’을 당당히 예능 콘텐츠로 가져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늘어날 전망이다. ⓒJTBC/MBN

여성이 주 양육자로 등장하거나, ‘이혼 후의 삶’을 당당히 예능 콘텐츠로 가져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늘어날 전망이다. 7월11일 첫 방송된 MBN ‘돌싱글즈’는 8명의 ‘돌싱’ 남녀가 만나 합숙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의 연애 관찰 예능 프로다. 모델, 사업가, IT 기업 기획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출연자들이 나와 자녀 유무, 이혼 과정의 고충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작진은 “이혼한 사람들을 달라진 시선으로 봐주길 원한다”고 밝혔다. ‘내가 키운다’ 제작진도 “한부모 가정, 이혼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는 예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은 “2001년도만 해도 이혼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고, 혼자 아이 키운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라며 “미디어가 앞장서서 이혼하고도 아이를 잘 키우고, 개인의 사회적 성취와 삶도 누리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반가운 변화”라고 말했다.

월평균 소득 169만원...고강도 불안 노동
예능이 미처 담지 못한
싱글맘의 팍팍한 삶도 주목해야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현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한부모들에게 절실한 것은 사회적 지지망이다. 당장 집안일(28.9%), 돈이 필요할 때(21.1%), 본인이 아플 때 (14.6%), 아이가 아플 때(14.3%), 생활 관련(11.7%)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는 한부모가 많다.

혼자 아이 키우는 여성들의 생활고도 심각하다. 한부모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월 219만원에 불과하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사는 가구는 169만원, 아빠와 아이가 함께 사는 가구는 247만원으로 격차가 80만원가량 벌어진다. 한부모의 80% 이상이 ‘양육비·교육비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취업한 한부모의 41%는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오 사무국장은 “이혼한 여성의 90%가 당장 살 집이 없다고 호소한다. TV 속 연예인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다”며 “가장 낮은 자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사회상 반영은 너무도 공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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