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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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 간첩 활동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70대 여성이 4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5일 인천지법 형사13부(호성호 부장판사)는 1972년 간첩방조 및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A씨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반공법 위반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함께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71년 10월 경기도 자택에서 "남편에게 전달해 달라"는 한 북한 공작원의 부탁에 따라 공작금 20만원과 함께 지령 문건이 담긴 봉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이듬해 3월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 B씨로부터 공작금 11만원을 받고 간첩 활동을 방조한 혐의도 받았다.

A씨의 시부모도 당시 아들 B씨가 보낸 공작금을 받거나 은신처를 제공해 아들의 간첩 활동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1972년 당시 징역 4년을, 그의 시부모는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재심에서 "남편과 함께 배를 탔다는 사람으로부터 당시 20만원과 편지 1통을 건네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 사람이 북한 공작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재심 재판부는 "경찰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으로 체포된 이후 감금됐고 압박감 속에 자백했다"며 "검사가 이를 해소할 만한 증명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북한 공작원인 줄 알고도 돈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며 "당시의 금품수수를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위험한 행위로도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A씨의 남편 B씨는 어부로 1968년 서해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가 같은 해 12월 남한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경찰에 체포돼 '북한에 있을 때 노동당에 입당해 충성을 맹세했고 공작원으로 투입됐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을 인정했고, 1972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됐다.

B씨는 2015년 7월 "과거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며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올해 5월 재심을 통해 끝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그러나 무죄 판결문을 직접 받아보지 못한 채 2019년께 숨졌다.

A씨는 남편과 별도로 2015년 인천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항고한 끝에 2019년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A씨 시부모는 이미 사망한 뒤여서 B씨가 살아있을 때 대신 청구했고 같은 결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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