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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송호대학 방과후아동보육과 교수◀

새해를 맞으면 내 나이 사십이다. 학교다닐 때 지금 내 나이가 되는 아줌마들(나의 어머니를 포함해서)에게서 거의 희망을 보지 못했다.

시장에서 몇 푼 아끼려 안간힘을 쓰는 아줌마, 미용실에서 오래 가는 퍼머를 고집하던 아줌마, 학교에 오실 때만 아끼시던 외출복을 입으시던 엄마, 집에서 늘 부엌에 계시던 엄마, 식구들 퇴근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외출에서 돌아오던 엄마… 나이 사십에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의 생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벗어났다기보다 직장생활을 한다고 더 여유 없이 살았고 더 갇혀 살았다. 아침에 눈떠서 하루를 전쟁처럼 치르는 생활을 반복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패잔병처럼 귀가한다.

그러다 보니 한해가 가도 그다지 새롭지 않고,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 설레는 미래를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인들에게 연하장 하나 변변히 보내지 못했고, 새해를 맞으면서 안부 전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해의 기쁨을 나누는 일도 잊은 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저녁에 일찍 자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인간으로 변했다.

이 모든 것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일하는 여자로 이 땅에서 살아남는 험난함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아이를 낳고 어줍잖은 육아휴직을 끝내고는 아이 돌봐줄 사람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치원때는 종일반에서 가장 늦게 아이를 데려오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고, 초등학교 때에는 한창 일하는 시간에 시도때도 없이 열리는 학교행사에 참석못해 아이의 기를 죽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원 시기 동안은 나았다. 종일반이라는 것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니 12시 반이면 집으로 온다.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것 같고 안전문제도 걱정스러워 하루종일 아이를 염려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학원에 순례시킬 수도 없고, 예전에 다니던 종일반 어린이집에 보내자니 우리아이가 작은 보모 노릇만 하게 될 것 같고. 이럴 때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아이 친구의 엄마가 아이 둘을 함께 방과후에 보살펴 주기로 한 것이다.

짜잔!! 취업주부와 전업주부의 행복한 만남. 전공이 방과후 교육에 관한 것이니까 이런저런 물음들을 던져봤더니 취업주부도 전업주부도 정말 원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들이 협력해서 '대한민국 엄마연대'를 만들면 어떨까? 올 한해는 '대한민국 엄마연대'를 결성해 취업한 주부들의 자녀 보육문제를 해결하고 전업주부들의 전문성을 살리는 일을 해볼란다. 여성신문 독자 여러분, 함께 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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