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교육부 “여학생 바지·치마 선택권 권장”
2021년 ‘복장제한 가능’ 학생인권조례 조항 폐지
여학생 복장 규정 사라지는 추세지만
학생 불만 여전...교육청 청원·시위·캠페인 지속

여학생 복장 규제 폐지운동사 ⓒ이은정 디자이너

‘여학생은 치마든 바지든 원하는 교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20여 년이 됐다. 그동안 여성부, 교육부,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 국가기관도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강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하고 치마·바지 선택권을 제공하라고 일선 학교에 권고했다. 

학교 현장은 그새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일선 학교의 경직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전통, 관습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규정을 고집하는 학교들도 있다. 당사자인 학생들, 청소년인권 전문가들은 항의하며 캠페인, 시위, 교육청 청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이어가고 있다.

교육청·인권위 권고부터 학생인권조례 단서조항 폐지에도…학생들 인권침해 여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여학생들도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선택하게 해달라”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요구가 빗발치자, 2000년 3월 교육부는 학교에 여학생들이 바지와 치마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권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와 외부 기관은 ‘권고’만 할 뿐, 교복 규정은 각 학교가 알아서 정하는 게 원칙이다. 변화가 더딘 이유다. 2003년에도 여학생이 다니는 전국 4000여 중고교의 54%가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허용했다. 그해 정부는 ‘여학생 치마 교복 의무 조항은 남녀차별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여성부는 “여학생 교복이 치마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부족하고, 치마만 입을 경우 여학생의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게 되어 성별에 따른 차별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 “남성 차별”이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여성부의 권고를 환영했다.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 문제는 2013년 다시 이슈가 됐다. 한 여학생이 '여학생은 치마만 입게 한 교칙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여학생에게 치마교복만 강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청소년인권단체인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여학생이 바지 교복을 선택한다고 무슨 문제가 일어나냐’며 비판했다.

2015년에도 서울 시내 중학교의 73%(281교), 고등학교의 59%(189교)만이 여학생에게 바지 교복을 허용했다(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여중생 10명 중 3명, 여고생 10명 중 4명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2020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여학생이 바지교복을 선택할 수 있게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해 10월 교육부는 여학생 바지교복 선택권을 부여하도록 학교 교복구매 요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학교규칙으로 복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단서 조항은 지난 3월25일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여학생의 선택권은 100% 보장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좀 없애자. 용의 복장 규제.” 고등학생 김토끼(17·가명)씨는 서울시교육청을 향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복장 규제를 개정해달라는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제는 좀 없애자. 용의 복장 규제.” 고등학생 김토끼(17·가명)씨는 서울시교육청을 향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복장 규제를 개정해달라는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홍수형 기자

학생 당사자들은 2021년에도 원하는 교복을 입을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일선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상대로 교복 규정 개정을 위한 설문조사 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에서 두발·복장 규제 반대 시위도 진행했다.

‘학생인권 침해하는 용의 규정, 개정하도록 교육청이 나서주세요’라는 서울시교육청 청원도 진행 중이다. 4월18일 시작돼 5월15일 기준 436명이 동참했다. 서울 A여고 재학생 김토끼(17·가명)씨는 교사에게 바지 교복은 학생답지 못하다는 등의 지적을 받고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김씨는 “단순히 학생들을 불편하게 해서, 꾸밀 수 없게 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하나의 자주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다른 학생들을 향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커져야 복장 규제 현실을 알릴 수 있고, 학교도 바뀔 수 있다. 같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했다. (관련기사 ▶ “양말은 흑백만, 여학생은 치마”? 분노한 여고생 교육청 청원 나서 www.womennews.co.kr/news/21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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