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 선 넘기] ‘깜깜이’ 그렇게 쓰고 싶으면 써라
[2030 정치 선 넘기] ‘깜깜이’ 그렇게 쓰고 싶으면 써라
  •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승인 2021.05.15 08:41
  • 수정 2021-05-17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가 '차별금지법 제정 발원 국회에서 청와대 범종, 목탁 행진' 기자회견을 열고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가 울먹이며 발언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020년 11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가 '차별금지법 제정 발원 국회에서 청와대 범종, 목탁 행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무엇이 달이고 무엇이 손가락인지는 누가 정하는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다는 비유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해일이고 무엇이 조개인지는 누가 정하는가? 그것은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규정하고 결정하는 힘이다. 권력은 의제를 어떻게 다룰지 이전에 무엇이 의제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결정한다. 여러 맥락이 중첩된 상황에서 주목할 것과 배제할 것을 규정하는 힘, 그것이 권력이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적 언행과 혐오표현은 오랫동안 달이나 해일보다 손가락이나 조개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누군가의 차별적 언행을 지적하는 것은 달 대신 손가락이나 보는 일,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일, 더 나아가면 괜한 시비를 거는 일로까지 폄하된다. 한편 차별적 언행을 한 사람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는 경우, 더군다나 그가 권력이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인 경우는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차별 발언을 지적한 쪽이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를 내세우며 맥락을 흐리는 존재로 규정되어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같은 차별 발언이라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그 사회적 의미는 달라진다. 모든 시민을 대표해 공공의 가치를 증진할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정치인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드러내는 언행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나의 개인적 염려를 넘어선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혐오표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5%가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혐오를 조장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치인이 혐오표현을 줄이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의견은 3.8%에 불과했다.

여당의 대표를 역임한 정치인의 차별 발언에 시정권고를 내린 인권위 결정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피진정인의 발언은 (중략)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혐오를 공고화 하여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을 지속시키거나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를 시작한 이후 상기한 이유들로 여러 차례 다른 정치인들의 차별발언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시정을 요청해왔다. 이런 지적이 늘 원활하게 수용되지는 않는다. 흔쾌히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상당한 반발이나 비난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것도 차별이고 저것도 차별이라니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든가(이 과정에서 많은 경우 추가적인 차별 발언이 발생한다) ‘네가 뭔데 어떤 말을 써라 마라 하느냐’는 것이다. 전형적인 과잉반응이다. 이런 말들은 해당 표현이 차별이라고 지적된 핵심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요소들에 반응한다. 감히 그 말을 발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지적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있지도 않은 가상의 검열 권력을 휘두른다고 성토하거나, 해당 표현이 가진 차별적 맥락을 생략한 채 국어사전을 가져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들이민다.

이런 과잉반응의 이면에는 차별적 언행 하나로 누군가를 구제 불능의 ‘차별주의자’로 낙인찍어 두고두고 조리돌리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과 동시에 ‘나를 포함해 누구든 의도치 않게 차별적인 언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 한 사회에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차별은 자연스러운 문화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다 해도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맥락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차별적인 언행을 할 수 있고 또한 당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우리 사회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무심코 반복해오던 언행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일 수 있음을 깨닫거나 지적받았을 때 이를 편안하게 수용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열린 태도가 수반된다.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차별에 대한 공적인 대화를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주어져있다.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아닌지, 무엇이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이고 그렇지 않은 차별인지 판단하는 일은 쉬울 때도 있지만 아주 복잡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차별은 달을 가리는 손가락이나 해일을 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개가 아니라 달이고 해일 그 자체이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동안 조개와 손가락에 머물렀던 차별에게 달이자 해일로서의 온전한 자리를 찾아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사회에 누구에 대한 어떤 차별이 존재하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수많은 말과 행동들이 그러한 차별을 어떻게 공고히 존속시키는지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하고 많은 다른 말과 행동의 가능성을 두고서 굳이 누군가를 차별할 여지가 드러난 여러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지. 예를 들면 코로나19 감염경로불명 감염자를 지칭하기 위해 굳이‘깜깜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지. 굳이 써야 한다면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묻고싶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최선인지.

장혜영 의원은 “최근 활성화되는 ESG 경영과 투자 측면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조직 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집단적 사고(Groupthink)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혜영 의원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