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투표 성향 분석에 반페미니즘 프레임 씌우나]
지지층 이탈이 페미니즘 탓?
여당 출신 전임시장 성폭력에
‘피해호소인’ 사용해 피해 부정
당헌 개정해 책임 회피도

20대 여성 15% 제3후보 선택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아

4·7 재보궐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홍수형 기자
4·7 재보궐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에서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홍수형 기자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정부와 여당이 여성만 챙기는 데서 오는 ‘역차별’ 때문이라는 주장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등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이 가진 다양한 문제의식은 오히려 정치권과 언론이 부추기는 성별 갈등에 묻혀버렸다.  

4‧7 재보궐선거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연일 페미니즘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20대 남성의 72.5%는 오세훈 시장을 지지했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22.2%였다. 20대 남성의 박 후보 지지는 전 연령·성별 중 가장 낮았다.

전형적인 선거 공식도 깨졌다. ‘2030=진보, 4050=보수’라는 등식은 뒤집혔다. 20대 이하(18~29세) 남성은 오세훈 시장에게 표를 몰아 줬다. 문재인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던 20대 이하 여성에서도 40.9%가 오 시장을 선택했다. 박 후보 지지율이 44.0%로 오 시장을 앞질렀으나 21대 총선과 비교하면 여당 지지표 상당수가 이탈한 것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20대 남성이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을 선택한 것에 여론조사기관과 언론, 정치인들이 별다른 근거 없이 페미니즘, 여성정책을 원인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여성을 편애하고 과도한 여성정책을 추진한 탓에 20대 남성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는 주장이다. 실제 20대 남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이들의 문제의식은 삭제된 채 젠더 갈등 프레임을 확대재생산 한다.  

당헌 고쳐 후보내고 2차 가해 논란 일으킨
더불어민주당이 여성 편만 들었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문제로 공석이 됐기 때문에 치뤄야 했다.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인한 보궐 선거이기 때문에 기존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은 후보를 낼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과나 반성 대신 후보 공천을 위해 당헌 개정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만든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질 때에는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 조항은 당원 투표를 통해 폐기됐다. 

게다가 민주당은 보궐선거 기간 내내 성평등 의제에 뒷짐만 졌다. 성폭력 문제는 정쟁으로만 소비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제대로 된 공약과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세계여성의 날인 3월8일 발표한 여성공약은 기존 정책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문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인만큼 조직 구조를 되짚어보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박영선 후보의 공약에선 보이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주요 5대 공약 가운데 '성평등' 관련 공약은 전혀 없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했던 진선미, 고민정, 남인순 의원은 그대로 후보 캠프 요직을 맡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박원순 전 시장을 미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경선 후보였던 우상호 의원은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글을 게시했다가 비판을 받았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원순이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냐'라는 발언을 하며 2차 가해 논란까지 불렀다. 

박영선 후보는 선거를 5일 앞두고 뒤늦게 추가 여성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직 문화 개혁과 여성부시장 임명을 약속했으나 이미 판은 기울어진 상태였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선거 결과의 책임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단순하고 쉽기 때문이다.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30 세대 사이에 남녀 갈등을 부추겨 이득을 보는 것은 선거에 대한 귀책 사유가 있는 '86세대'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오세훈 시장의 지지 이유를 ‘젠더 이슈’ 하나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일부 주장처럼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오세훈 시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 이탈이 박영선 후보의 낙선에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면서 “특히 20대 남성의 경우, 20대 여성처럼 고정적인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스윙보터’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각에서 20대 남성의 표심을 내세워 여당 지지 이탈을 페미니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이번 선거의 책임이 있는 정당의 남성들이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집단을 만들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며 남성의 이익을 공고화한다”면서 “이런 행태가 얼마나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의 논리에 익숙해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짚었다.

20대 남성의 지지율에 숱한 분석이 쏟아지는 반면, 두드러진 이탈 현상을 보이는 20대 여성 표심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여당 지지층이던 20대 여성의 이탈과 제3의 후보를 선택한 정치 행위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의 44%가 박영선 후보를 찍었다. 압도적으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한 20대 남성(72.5%)과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20대 여성의 박 후보 지지율이 높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선 20대 여성의 63.6%가 민주당 후보(지역구 기준)를 택한 것과 비교하면 20대 여성의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20%포인트 가량 빠졌다.

특히 20대 이하 여성 중 15.1%는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같은 ‘기타 후보’를 지지했다. 다른 세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높은 비율이다. 20대 이하 여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소신 투표’ 비율을 보인 집단은 30대 여성(5.7%)이었다. 무소속·군소정당 지지를 세대별로 나눠봤을 때 20대 여성에서 가장 높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특히 ‘페미니즘’을 앞세운 여성 후보가 4명 출마했다. 20대 여성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이후 민주당의 소극적 대처에 거대 양당 투표를 포기하고 소신 투표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특히 20대 여성들의 선택은 문 정부의 강한 지지층이었던 그들이 젠더 이슈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이탈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대 효과를 볼 때 언론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앙상블 효과다. 즉 각각의 세대 요인이 총합해 정부 여당 지지의 이탈로 이어진 것”이라며 “특정 세대의 변화가 변수가 될 수는 있지만 20대 남성 뿐 아니라 거의 전 연령대에서 이탈이 나타나는 등 변화가 있었다. 한 세대만 변수로 작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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