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발언] 문자폭탄은 아직도 ‘양념’인가
[유창선의 발언] 문자폭탄은 아직도 ‘양념’인가
  • 유창선 평론가
  • 승인 2021.04.12 09:47
  • 수정 2021-04-12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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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과 다른 목소리에 어김없이 문자폭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 민주주의 망가뜨려

문재인 대통령의 ‘양념’ 발언은 두고 두고 회자되는 일화가 되었다. 지난 2017년 대선정국에서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은 더불어민주당 내의 다른 경선 주자들을 향해 ‘18원 후원금’과 욕설이 담긴 문자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했다. 이런 행동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는 와중에 문 대통령은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감싸주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에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박영선 의원조차도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상처받은 사람에 소금 뿌리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 21대 초선의원들이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재보선 결과에 대한 초선의원들의 공동 입장문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21대 초선의원들이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재보선 결과에 대한 초선의원들의 공동 입장문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공동취재사진)

그 뒤로 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은 변함없이 건재하다. 4.7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결과를 놓고 청년 초선 의원 5명이 조국사태와 내로남불을 거론하며 반성의 입장을 발표하자, “초선 5적"을 향한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SNS에는 이들의 전화번호가 공유되며 문자폭탄을 독려하는 제법 알려진 인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런 문자폭탄 행동은 누가 볼까 숨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거리낌없이 공개적으로 독려하는 의로운 행동이 된 모습이다. 선거 직후 비슷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던 조응천 의원이나 김해영 전 최고위원에게도 “당을 떠나라”는 문자폭탄과 욕설 댓글들이 줄을 잇기는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흥미로워야 할 경쟁’도 끝났건만 양념은 여전히 계속되어 왔다. 민주당내에서 ‘친문’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향해 문자폭탄은 어김없이 투하되었고, 금태섭 전 의원은 그런 폭력적 문화를 견디다 못해 결국 민주당을 떠나게 되었다. 야당 의원들을 향해서도,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판사들”을 향해서도,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양념은 뿌려져왔다. 민심은 참패한 민주당의 반성을 말하지만 그럴수록 양념부대의 기세는 더욱 달아오른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입을 막으려는 문자폭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의견만이 지배하고 다른 의견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전체주의이다. ‘친문’들의 생각만 존재할 뿐 다른 생각은 입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정당이라면 민주당은 전체주의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민주주의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이 뿌린 ‘양념’의 맛을 즐기는 사이에, 민주주의는 이렇게 뒷걸음질쳐 왔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기 이전에 그것은 양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동임을 분명히 말해줘야 한다. 문 대통령이 진즉에 지지자들을 향해 “그런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해야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다”며 설득했다면 문자폭탄의 겁박이 이렇게까지 기승을 부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했던 정치는 다원적 인간들 사이에서 다양성을 전제로 한 의사소통 행위였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의 영역을 증오의 감정으로 덮어버리는 광경은 한나 아렌트가 꿈꾸었던 정치적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 곳에서 정치는 새로운 시작이 되지 못하고 다시 사막이 되고 만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입을 막으려는 사람이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세상에 민주주의는 없다. 이 부끄러운 광경에 대해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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