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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혜 /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편집장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 중 '육체'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가능성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1980∼1990년대. 사이버 페미니즘은 여러 가지 특성들 중에서도 이 부분에 특히 주목했다.

여성에게 있어 육체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이 놓여지는 위치와 시선뿐 아니라 성(gender) 자체의 문제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사이버 페미니즘의 시발점 중 하나가 된 '사이보그 선언문'의 필자이자 과학사가인 도나 해러웨이는 기계/유기체, 남성/여성 등의 이분법에 의존해왔던 기존 사고에서 벗어나 '사이보그', 즉 다종 혼합물로서 새로운 존재 조건을 적극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펼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이보그가 되자'는 이 급진적인 발상은 인공적인 사이버스페이스를 성차별 없는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유로운 페미니즘의 표현과 공간·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연대의 가능성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더욱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달나라 딸세포, 언니네, 일다 등 웹진으로 커뮤니티로 혹은 저널의 형태로 대안적인 공간을 사이버스페이스에 만들어온 여러 사례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이 공간들은 이제까지 '사적인 것''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소외돼왔던 여성들의 목소리와 그 내적인 힘을 응축시켜왔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해온 이들은 그와 동시에 사이버스페이스가 가능성만을 지닌 공간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새로운 표현과 시도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균열을 내려는 익명의 존재가 있다면 기존의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는 익명의 존재들도 있었던 것.

여성운동을 하는 NGO의 사이트들과 페미니즘을 내건 사이트들은 잊지 않고 다녀가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대개 한번 이상씩 몸살을 앓는다. 여성 비하적인 말과 이미지들로 도배되는 게시판, 영양가 없는 논쟁들로 가득한 소모전을 보며, 정작 자신의 공간을 절실히 원하는 여성들은 또 한 번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그 위축감은 자신이 그 공간에서 느낀 해방감에 비례하기에 현실세계의 일들보다 더욱 공포스런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 중 하나는 더욱 더 여성들의 대안적인 영토를 넓히는 것이다. 남녀평등의 분위기가 '기본'이 된 어떤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낼 수도 있고 여성주의 사이트에서 경험으로 전해지는 삶의 내공을 나눠 받을 수도 있다. 또는 온라인 카페, 블로그, 지식 검색 등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는 것을 여성주의 아이디어로 비틀어 볼 수도 있다. 이런 전환은 또 하나의 균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 자신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에 직접 대항하며 단련될 것인가,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다른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출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이런 전략은 여전히 경계가 혼란스런 사이버스페이스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일상적인 삶을 꾸려가게 될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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