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판사 ‘페티시’ 칼럼 파문
“긴 머리·하얀 얼굴은 내 페티쉬”
재판 받는 10대 여성들 두고
“이쁘고 좋은데 스타일 거슬려”
여성변회·여성단체 즉각 비판
“판사가 청소년 성적 대상화...글 삭제·사과해야”

15일 법률신문에 현직 판사가 미성년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내용으로 쓴 칼럼이 게재돼 논란이 일었다. ⓒ법률신문
15일 법률신문에 현직 판사가 미성년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내용으로 쓴 칼럼이 게재돼 논란이 일었다. ⓒ법률신문

소년 재판 담당 판사가 자신에게 재판받는 10대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내용의 칼럼을 언론에 게재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회)와 여성 단체들은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당사자와 언론사는 문제의 칼럼을 내리고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긴 머리·하얀 얼굴은 내 페티쉬”
재판받는 10대 여성들 가리켜
“이쁘고 좋은데 스타일 거슬려” 등 부적절 발언

15일 법률신문은 김태균(39·사법연수원 37기) 수원지방법원 판사의 칼럼 ‘페티쉬(fetish)’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김 판사는 칼럼에서 “나의 여자 보는 눈은 고전적입니다. 칠흑 같은 긴 머리, 폐병이라도 걸린 듯 하얀 얼굴과 붉고 작은 입술,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이라고 적었다.

이어 “소년 재판을 하다 보면 법정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족히 25살 이상 차이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할 말이 없다”며 “스타일은 한눈에 들어온다. 생김생김은 다들 이쁘고 좋은데, 스타일이 거슬린다. 짙은 화장과 염색한 머리는 그 나이의 생동감을 지워버린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그래서 말한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긴 생머리가 이쁘다. 머리는 시원하게 넘기든지, 짧게 자르는 게 단정해 보인다. 바지·치마 줄여 입지 마라.’ 그렇게만 하면 정말 예뻐 보일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은 내 페티쉬일 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며 “세상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좋고 나쁠 뿐”이라며 “강요된 좋음은 강요하는 자의 숨겨진 페티쉬일 뿐”이라고 말했다.

15일 미성년자 성적 대상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태균 판사의 칼럼 전문이다. ⓒ법률신문 화면 캡처

해당 칼럼에는 비판 댓글이 여럿 달렸다. 한 누리꾼은 댓글에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페티쉬 운운하는 글을 올리다니. 페티시의 사전적 정의는 ‘숭배를 일으킬 수 있는 물건 혹은 부분, 성적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물’”이라며 “판사님이 ‘여자 보는 눈’으로 글을 시작한 것이 특히 더 충격적이다. 평소에 여자 보는 눈으로 소년 재판을 받는 미성년자들을 보고 계셨는지요”라고 비판했다.

 

“판사가 청소년 성적 대상화하다니” 여성변회·여성단체 질타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회)와 여성 단체들은 해당 판사가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여성변회는 이날 오후 성명서를 내고 “판사 본인의 뜻은 위기 청소년들을 성적 대상화 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페티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재판을 받는 청소년들의 외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은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재판하는 판사로서 부적절한 언행이며, 마음가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판사가 법대에서 재판받는 청소년의 용모와 스타일을 보고 그에 대해 때때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였다는 것 그 자체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글로 칼럼을 시작하며, 판사가 판사석에서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 대상이 미성년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여성변회는 “소년 재판을 담당하는 현직 판사가 부적절한 내용의 기명 칼럼을 썼다는데 유감을 표명하며, 판사로서 더욱 신중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기명 칼럼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게재한 법률신문에도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수원 지역 여성·아동 인권단체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성매매여성·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수원여성의전화 부설 성매매피해상담소 ‘어깨동무’ 정미경 소장은 여성신문에 “위기청소년 재판을 맡는 판사가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고 그 내용을 기명 칼럼에 쓰다니 무척 놀랍다. 평소 10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 게 아닌가 유감스럽다”라며 “언론사와 해당 판사는 어서 해당 칼럼을 내리고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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