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여성 강간한 남성이 무죄라니" 여성단체, 사법부 규탄
"만취한 여성 강간한 남성이 무죄라니" 여성단체, 사법부 규탄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7.07 12:37
  • 수정 2020-07-07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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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개 여성단체 공대위 조직
‘준강간 사건’에 대한 조사 착수
여성단체 활동가가 피해자의 입장문을 대독하고 있다. 피해자는 “나의 사건은 가해자 같은 남성들의 잘못된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건의 대표성을 띠고 있을 것”이라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겠다”고 밝혔다. ⓒ김서현 기자
여성단체 활동가가 피해자의 입장문을 대독하고 있다. 피해자는 “나의 사건은 가해자 같은 남성들의 잘못된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건의 대표성을 띠고 있을 것”이라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겠다”고 밝혔다. ⓒ김서현 기자

 

남성이 준 술을 마신 뒤 의식을 잃은 여성을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텔에 옮겨 강간한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찰은 “사건이 되겠어요?”라는 말로 조사를 시작하고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렸으며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국민참여재판을 열고 검찰이 가해자를 심문할 필요 없는 ‘백지구형’을 하도록 허락했다. 배심원들은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163개 여성단체들이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만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사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형법 제299조는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간음하는 행위를 준강간 내지 준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 그러나 술과 약물에 취한 성폭력 피해자를 두고 많은 수사기관과 법원은 “왜 가해자와 술을 마셨는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 “○○에서 어떤 옷차림을 한 것은 성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도 아니었는가” 등 피해자답지 못한 행실을 추궁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는 2017년 5월 휴일 홍대 클럽에서 남성 A가 준 술을 마신 후 정신을 잃고 소지품 없이 서울 외곽지역 모텔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소지품도 신발도 없이 숙박업소에 남성 5명에게 끌려 들어가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나왔으나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공대위는 해당 사건을 두고 “상담현장에서 많이 접하고 있는 ‘보통의 준강간’ 사건”이라며 “술을 매개로 한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도 사법부는 범행을 의도하거나 실행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8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술과 약물을 매개로 한 성폭력 상담이 전체의 17.6%를 차지한다. 2019년 검찰청의 처분결과에서 강간사건의 검찰 기소율은 44.8%에 불과하다. 

여성단체는 법원이 무죄추정 원칙을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며 성폭력 피해를 부정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 아니라는 이유로 준강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성행위 자체가 없었거나 동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163개 여성단체들이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만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사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서현 기자
163개 여성단체들이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만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사건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서현 기자

 

정은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과 같이 심신상실 및 항거불능 상태의 명백한 증거와 일관적이지 않은 가해자의 진술, 비상식적인 정황 등이 증명된 사건조차 무죄가 선고된다면 추후 어떤 준강간 사건의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는 선례를 남기게 되며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피해자 입장문 대독이 있었다. 피해자는 “나의 사건은 가해자 같은 남성들의 잘못된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건의 대표성을 띠고 있을 것”이라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겠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준강간 사건들에 대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의식을 잃은 여성을 ‘골뱅이’ 등으로 부르며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바로 잡기 위한 활동에 들어간다.

공대위는 오는 24일까지 술과 약물을 매개로 일어난 준강간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 처벌 등에 대한 조사 작업을 하며 피해자에 대한 연대 탄원 등을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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