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한의원장, 건강교육가, 다이어트자습서〈살에게 말을 걸어봐〉저자 www.yakchobat.com 02-719-4231

마포강가의 뱃집 딸이었던 나는 여름이면 친구들을 우리 집 배에 공짜로 태워서 여의도 밤섬으로 놀러나갔다. 마포에 다리가 없던 시절이니 휴가니 레저란 말은 듣도 보도 못했고 복더위 물리치게 민어탕이나 육개장 끓여서 몸보신하고 수박 한 덩이를 쪼개 먹으면 마냥 배부르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방송에서 민어탕 얘기를 하니 사회자가 놀라면서 ‘좀 사시는 집이었나 봐요’ 라며 비꼬(?)았다. 민어탕은 사는 집이라서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엔 지금의 동태처럼 많이 잡히던 어물이었다. 요즘 날씨처럼 장마비가 계속되면 할머니는 ‘큰물이 졌다’고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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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천연의 에어컨

아버지와 나는 한강물이 얼마나 차올랐나 우리 배는 떠내려가지 않았나 걱정을 하며 뚝방으로 물구경을 가곤 했다. 황토색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오는 판자조각, 자질구레한 솥단지 살림살이에 돼지까지. 이 풍경은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자동차니 냉장고, 플라스틱제품으로 떠내려오는 품목이 바뀌었을 뿐이다.

여름이면 해마다 가뭄 아니면 홍수가 어김없이 반복된다. 언제 그럴 줄 몰랐던가. 한두 해도 아니고 단군 이래 아니 청동기 신석기를 거슬러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계속 돼온 자연의 순환이다. 악순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들의 생각일 뿐. 자연은 늘 정해진 대로 돌아갈 뿐인데 툭하면 하늘 탓이나 한다.

강 길이가 짧아서 홍수가 난다느니 일년 중 비가 여름 석 달에 한꺼번에 퍼부어서 바다로 다 흘러간다는 둥 맨날 똑 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한다. 하늘이 뭔 잘못이 있나? 언제나 옳은데. 만물을 햇볕으로 키워주고 비를 내려서 번성하게 해주고 돈 한푼 받지 않는 고마운 어머니인데. 물을 머금을 나무들을 베어 버리고 산을 함부로 깎아 산사태를 일으키고 땅속으로 스며들 물길마저 시멘트로 막아 버렸으니 홍수든 가뭄이든 누구 탓을 하며 원망을 돌리겠나.

우리나라의 여름은 하늘에서는 큰 불기운이 내려오고 땅에서는 큰 물이 지는 계절이다. 봄이 새롭게 소생하는 생(生)의 기운이라면 여름은 생한 것을 크게 기르는 양육번성의 장(長)의 성질을 가졌다. 바로 큰불과 큰물의 기운으로 사람도 튼튼해지고 숲도 번성하고 짐승들과 벌레조차도 그 짧은 생 가운데서 최고의 젊음과 열정을 누린다.

지금 북경은 40도, 이라크는 45도에서 50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복받은 나라다. 아무리 여름이라 태양이 이글거려도 큰물이 져서 적당히 식혀주니 사막화가 안되고 온 나라가 푸른 녹색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주식으로 논농사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논은 물을 가두어서 가뭄과 홍수를 조절해 주는 댐 역할도 하며 논물의 증발로 대기온도를 식혀주는 천연의 에어컨이다. 논 대신 공장 지어 자연을 희생시켜 얻는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다. 뙤약볕에 시름 많은 농촌사람들 생각하면 덥다고 수돗물 써가며 엄살부리기가 정말 미안해진다.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음식점들은 경쟁하듯 에어컨을 펑펑 틀어 놓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들지 않는단다. 버스와 지하철 기사아저씨들은 아예 긴소매 옷을 입고 있다. 이렇게 시원한 것만 밝히며 여름을 지내면 지구력이 오히려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야한다. 일년에 보름 길어봤자 한달 더위인데 선풍기 30대 만큼 전기를 잡아먹는 에어컨을 집집이 관처럼 세워 놓고 추위에도 더위에도 맥 못추는 나약한 체력들을 만들고 있는 건 국력낭비라고 부르짖고 싶다.

머리·팔·다리 시원하게, 뱃속은 따뜻하게

여름은 여름답게 짱짱하게 더위를 견디고 겨울은 맵게 추위를 이겨야 철에 맞는 몸살림이 돼서 사람이 여물어 진다. 체온이 올라가 땀을 흘려서 진액이 다 빠지고 찬물, 빙과류, 과일만 입에 당기고 밥맛은 없어지는 때일수록 위장도 피곤해지고 위산도 묽어져서 살균력과 소화력이 약해진다.

이때 체력이 떨어지거나 과로한 사람일수록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설사, 복통 등의 위염, 장염이 오기 쉽다. 특히 여름내 피로, 불면에 냉한 음식으로 배아픔에 기운이 빠지며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무거운 여름타는 주하병(注夏病)도 생긴다. 또 여름감기에 에어컨을 너무 쐬면 피부가 바늘로 찌르듯이 따갑고 맥을 못 추는 내상외감도 있는데 이를 ‘냉방병’ 이라 부른다. 이때는 비만한 체질이면 사철탕이나 추어탕에 산초로 땀을 흘려 지방층의 노폐물을 몰아낸 후 콩, 두부, 해조류의 담백한 식품으로 서서히 열을 식혀 주는 것이 좋다.

입맛을 잃어 마르고 진땀이 흘러 더욱 수척한 체질이면 인삼, 황기를 넣은 삼계탕이나 육개장, 어죽이 최고의 여름 보양식품이다. 더운 약성의 인삼도 다른 약재의 배합에 따라 진액을 생기게 하고 갈증을 멈추는 묘미가 있는데 여름에는 인삼 1, 오미자 1, 맥문동 2의 비율로 달여서 차게 식혀 마시면 진액을 보하고 축 늘어진 원기를 살아나게 하는 여름의 으뜸가는 보약 - 맥을 생기게 한다는 생맥산(生脈散)이 된다.

머리, 팔, 다리 등은 시원하게 그러나 뱃속은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탈 없이 여름을 이기는 건강법이다. 몸의 등판에는 태양열을 저장하는 갈색지방세포가 있다. 기름 때가며 찜질하는 대신 여름에 공짜 〈햇볕 불가마 찜질〉 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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