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첫 여성총동문회에서 만난 여성과학도들

미국에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 있다면 한국에는 <카이스트>가 있다. 지금까지 카이스트가 배출한 여성은 1500명 정도. 지금은 학사과정의 30%가 여성이다. 그런데 카이스트를 졸업한 여성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난 달 28일 오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는 ‘KAIST 총 여성동문의 밤’에 카이스트 출신 여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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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KAIST 총여성동문의 밤 행사는 1부 LG CNS 기술대학원 박웅규 부장의 Self Leadership 강의, 2부 이화여대 제약학과 이공주 교수의 사회경험담 및 선후배 나눔의 장, 3부 홍창선 KAIST 원장과 오길록 KAIST 총동창회장의 축사로 진행됐다. 이날 예정된 여성동문회장 선출 건은 운영위원회로 위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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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KAIST 총여성동문의 밤을 준비한 LG CNS 기술대학원 임수경 부원장은 “선후배간 멘토링을 통해 삶의 지침과 여성 네트워크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에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 있다면 한국에는 <카이스트>가 있다. 32년 전 설립된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는 학생들의 일상이 드라마 소재로 쓰일 만큼 세간의 관심이 됐다.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뛰어난 과학지식을 겸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의 멋과 낭만도 즐길 줄 아는 청춘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카이스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그 대한민국 젊은이의 재능과 낭만의 상징이 된 카이스트를 졸업한 여성들은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까지 카이스트가 배출한 여성은 1500명 정도. 지금은 학사과정의 30%를 여성이 차지한다.

지난 달 28일 오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카이스트 개교 32년 만에 총여성동문의 밤이 열렸다. 학교를 떠난 지 길게는 십수 년, 짧게는 수년이 흐르고 난 뒤 연구소, 학교, 기업 등 다양한 장소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카이스트 여성동문들 100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사회에 갓 첫발을 내디딘 후배들과 어느 정도 자기 입지를 굳힌 선배들 간에 진지한 대화가 눈길을 끌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의 화두는 대략 2가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과 뚜렷한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카이스트 여성들 경영 마인드와

네트워크 아쉬워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라 불리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여성들에게는 사회적으로 거는 기대가 크다. 때문에 그들의 지적 능력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무겁다. 그래서 카이스트 출신들이 사회 진출을 고민하면서 제일 먼저 겪는 갈등은 연구실에 남아 깨끗하게(?) 순수 공학을 고집하느냐,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는 선에서 먹고 살 직장을 잡느냐다.

이화여대 제약학과 이공주(생물 석사 77) 교수는 학자로서 꾸준히 외길을 걸어온 경우다. 이 교수는 카이스트 재학 당시를 회상하며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선후배간 고민을 풀었지만 수적으로 적은 여성들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했다. 대덕연구단지에 있을 때는 공동의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여성과학기술인회’를 만들었지만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기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공학도로 수년간 길러져온 사람들에게 조직의 시스템은 너무나 낯설다.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문제는 연구소에 남은 사람들보다 기업으로 들어간 사람에게 더 큰 과제다. 관리직으로 진출해 성공한 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카이스트 출신들의 경영 마인드로는 아직 부족하다.

해외 기업 벤치마킹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전망에서 기술과 정보력을 지닌 여성 CEO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배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카이스트를 비롯한 대학들이 과학 인재들의 사회 진출까지 함께 고민하지는 못한다. 컨설팅 전문회사 액센츄어 김영주(전산 석사 83) 이사는 “최근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카이스트 여성들이 많다”며 “관련업계에서는 전문적인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고 있기 때문에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인적 네크워크와 경영마인드, 회계, 인사 재무관리 등 실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LG CNS 기술대학원 임수경(산업 석사 85)부원장이나 한기술정보통신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 최유미(화학 석사 86)이사도 마찬가지다. “연구만이 이공계의 몫은 아니다. 조직에서 성장을 거듭하다 보면 관리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데 카이스트에서 배우지 못한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모임을 통해 실제 조직문화에 대한 후배들의 이해를 돕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카이스트 명성 만큼 좌절도 커

카이스트 여성들의 또 다른 고민은 ‘여성’과 카이스트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의 문제. 외형적으로는 카이스트라는 화려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으로서 갖는 한계와 부조리는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 카이스트 여성들의 갈등과 좌절은 그 화려한 명성과 기대만큼이나 더 깊고 크다는 것이다.

한기술정보통신 최이사는 “졸업 후 불경기로 인해 6개월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데다 아기를 가지는 바람에 일을 포기했다.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수년간 과학인재로 길러져 왔지만 여성이기에 사회에서 제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자존심도 상했다”며 쓰디쓴 실패담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변리사로 일하고 있는 윤여분(재료 학사 90)씨는 “남성중심의 대기업 조직문화가 싫어 변리사에 도전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서 요구받는 역할이 있다. 먼저 시행착오를 거친 선배들이 삶의 해법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날 선후배 만남의 장에서는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소신 있게 인생 설계를 꾸민 동문들도 참석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카이스트에는 뚜렷한 비전이나 목표 없이 타인에 의해 과학인재로 길러진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카이스트의 자부심으로 해 내고 만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로 강사 및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영(재료 학사 88)씨는 최근 <장문테이프로 영어듣기>라는 책을 펴냈다. 김씨는 영어교육에 재미와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사회에 진출한 케이스다.

그는 “과학인재로 길러져 왔을 뿐, 정작 내가 희망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살아있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주위에서 많이들 안타까워했지만 자신 있다. 앞으로 유아교육에 관한 석,박사 학위를 따고 싶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이 외에도 푸르덴셜생명보험주식회사 라이프 플래너 조정희(산업 학사 90)씨도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두각을 나타낼 만큼 멋지게 자기자리를 찾은 경우다.

카이스트 여성동문회

네크워크 중심 될 듯

이 날 카이스트 여성동문회를 찾은 후배들에겐 선배들의 살가운 충고와 경험담이 가장 귀중한 선물이 됐을 것이다. 훌륭한 룰 모델을 통한 삶의 지침 획득과 공고한 여성 네트워크 구축이 이번 동문회의 가장 큰 성과. 카이스트 총 여성동문회를 조직한 임수경씨는 “여성으로서, 카이스트 출신으로서 긍정적인 시각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더욱 모범이 되는 선배를 주축으로 세워 여성동문회를 이끌어가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KAIST 총동창회 오길록(한국전자통신원구원장) 회장이 축사에서 인용한 “동창회 인원이 500명이 넘고 시끌벅적한 곳은 상고고 인원이 10명밖에 안 되는 곳은 공고”라는 말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모래알처럼 혼자 빛을 내긴 쉬워도 절대로 뭉칠 수 없다고 인식되는 과학기술인 풍토에서 카이스트 출신 여성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터. 이들이 있기에 한국 과학 기술 산업의 미래는 밝다.

당당한 사회적 자리 매김을 위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웃고 있는 이들 선배 멘토와 후배 멘티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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