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jpg

◀나는 뭔가 불완전한 여고 문화에서 벗어나 남학생들과 함께 보편문화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일부러 담배도 배웠다.<사진·민원기 기자>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름대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가져왔던(사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여성성을 극복하면서 남성성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여성이 인간으로 주체성을 가지려면 먼저 기존의 남성성을 습득해야 했던, 그러면서 과감하게 나약한 여성성을 벗어 던져야 했던 그간의 역사를 나도 모르게 반복했다. 여고·여대문화와 여자애들이 많은 과 분위기에 대한 혐오감을 키워가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뭔가 불완전한 여고 문화에서 벗어나 남학생들과 함께 보편문화의 일원이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성성, 여성성의 본질은 문제삼지 않았고 단지 자유롭게 그 영역을 넘나드는 게 좋다는 정도만 생각했던 것이다.

‘남성적 우정’의 상징인 술자리. 난 여성이기에 더 열심히 술도 권하고 ‘잘 마신다’는 소리 들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며 매번 새벽까지 망가지고 토하고 사람들을 챙겨 주었다.

힘든 일 있으면 영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담배 뻑뻑 필 수 있을 것 같아 2학년 때부터 동기들과 라운지에서 일부러 담배를 피기도 했다. 세미나 할 때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낮췄고, 말 할 때는 일부러 딱딱하게 논리구조를 갖춰 강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1학년 때부터 치마입고 화장하고 다니는 동기 여학생들보다는 좀 쾌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거뜬히 밤새고 같이 뒹굴고 꼬질꼬질해 질 수 있는 내가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기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내가 진입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는 명백하게 기존의 가부장 질서 아래서 만들어진 남성성 그 이상·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가 남성성을 흉내낸다고 해서 섹슈얼리티 구분이 사라질 수 있는가? 내가 함께 하는 술자리는 남성들만의 술자리와 무엇이 다르며 그 자리에 여성이 진입한다고 그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남성성-여성성의 벽이 허물어졌는가, 아니면 단지 기준은 그대로 둔 채 오히려 남성의 특질을 체화했을 뿐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어쨌든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불리고 사회화됐기 때문에 좀 더 잘 발현할 수밖에 없는 특징들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소위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 여성적 윤리학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 말이다. 이는 부정적으로 낙인찍혔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복원해 줄 뿐만 아니라 여성이기에 할 수 있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생물학적 여성들 마음을 후련하게 하며 그들 삶에 긍정적인 울림과 지침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여성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당구·게임·술자리 문화를 대화·상호교감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 오히려 그 영역 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목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여성이다. 나는 지난 내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나를 주체로 세우고 내 여성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바꾸겠다. 나는 여성 동료들과 연대하며 페너지(Fenergy)를 키울 것이다.”

김민혜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