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성평등을 말하다]
① 대전 지역 여성주의 매체 ‘보슈’
잡지 발행부터 글쓰기·기획교육,
축구교실 등 다양한 페미니즘 활동
‘여성주의’ 수업은 안되다던 시청
‘페미니즘’으로 이름 바꾸니 통과
“지방 여성 청년의 존재 드러내고
지역 청년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문화예술 산업 내 성평등한 문화환경을 지원하고 조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하고 여성신문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진행하는 ‘2019 성평등 문화캠페인 사업’으로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보슈’를 만드는 서한나 편집장, 권사랑 대표, 신선아 디자이너(왼쪽부터). ©이지혜
‘보슈’를 만드는 서한나 편집장, 권사랑 대표, 신선아 디자이너(왼쪽부터). ©이지혜

 

‘보슈’의 활동에는 경계도, 규칙도 없다. 2014년 대전의 청년 잡지로 시작한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잡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여성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 기획자를 꿈꾸는 여성에게 필요한 워크숍을 제공한다. 스쿨미투로 목소리가 부족할 때는 현장을 찾아 확성기 역할을 자처하고, 비혼 여성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한 멤버쉽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버닝썬 사건으로 여성들이 충격에 빠지고, 클럽 범죄가 공론화 되었던 지난 5월에는 여성을 위한 DJ 파티를 열기도 했다.

“2014년 마을 활동에 관심 있던 청년들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이후 현재의 팀원이 들어오면서 지역의 청년문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지금의 모양새가 갖춰지게 되었습니다.” (서한나 편집장)

이들의 행동 반경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프로젝트 팀 ‘수요일’에서 2년째 대전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는 행사를 기획하는 한편, 대전 지역의 다른 페미니즘 소모임, 여성단체와도 연결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탄생한 것이 축구팀 FC우먼스플레잉. ‘보슈’가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와 함께 창단한 축구팀은 거쳐간 팀원만 100명 가까이 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몸으로 느끼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어 서울에서도 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신청서를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운동장에 목마른 여성들이 많았다.

여성 축구팀 ‘FC우먼스플레잉’. ©보슈
‘FC우먼스플레잉’은 대전에서 만들어진 여성 축구팀으로 ‘보슈’와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가 함께 창단했다. ©보슈

축구 원데이 클래스로 확인한 운동에 관한 여성들의 관심은 ‘보슈’의 또 다른 활동으로 이어졌다. 보여지는 몸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몸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고, 연기 수업을 통해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페미 운동회를 통해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한데 모았고, <운동-부족> 전시를 통해 여성이 운동 그리고 운동장에 하나의 주체로 오롯이 서있길 원치 않는 사회를 비판했다. ‘보슈’의 활동은 평등한 기회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특히 문화적인 자극을 위해 대전을 떠나거나 서울을 오가던 대전 지역 청년들에게는 절실한 ‘인풋’이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들의 여성주의 활동이 환영 받았던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독자들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6호의 메인 기획을 ‘여성 혐오’로 정하자 구독을 취소하겠다는 남성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누군가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을 신고하고, 고의로 허위 신청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지원 없이 사업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환경은 이들에게 결코 유리하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

‘보슈’는 6명의 구성원이 꾸려가고 있는데 이 중 본업을 가진 3명을 제외한 상근직은 ‘보슈’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외부 활동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잡지를 발행하는 것 외에 워크샵이나 강연,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성격상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현장은 여성을 위한 지원에 무지하거나 소극적이다. ‘여성주의 글쓰기 수업’을 기획해 지원 사업에 공모하면 남성 배제적이라며 제목을 바꾸란 지적이 따라오고, 여기에 ‘페미니즘 글쓰기 수업’이라고 하니 통과가 되는 식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행사를 한다고 하면 한 번씩 뭔가에 부딪치는 거죠. 여성과 남성이 겪는 문제가 다르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해도가 높지 않아요.” (권사랑 대표)

“결정권자의 성비가 극단적으로 불균형해요. 그래서 편견이 심한데 여성 청년을 따로 호명 하는 걸 싫어하더라구요. 무조건 청년으로 묶고 그렇게 했으면 남자로 상상되어야 하고. 한번은 청년 사업 컨퍼런스 와달라고 제안을 받았는데, 이유가 지금 남자밖에 없어서 너무 칙칙하니까 와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신선아 디자이너)

대전 지역 잡지 ‘보슈’. ©보슈
대전 지역 잡지 ‘보슈’. ©보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라 운동장을 모두에게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은 최근 교실로까지 넓어졌다. 충남에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시작한 것.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과 만나며 교실이 남녀를 차별하는 사회의 축소판임을 깨닫는 동시에 성평등의 가능성까지 엿보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이러는데 갑자기 성차별 이야기를 할 수는 없죠. (웃음) 일단 아이들의 가방 색깔부터 남녀가 다른데, 그런 것부터 시작해요. 이 아이들에게 하나만 심어주자 하는 게 ‘너의 성별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으면 안 된다’예요. 남자라고 해서 파란 색만 입어야 하고 여자라고 해서 운동 못하는 거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서한나 편집장)

지방에서 살아가는 여성 청년의 존재를 계속 가시화해가며 활동의 동력을 얻고, 지역의 청년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보슈’의 지향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유효하다. 아이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로 가시화되어 그들을 직접 만나면서 조금씩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깨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고정관념에 놀라요. 여자답다고 했을 때 떠오르는 말이 ‘화장을 했다, 애교가 많다, 머리가 길다‘ 예요. 그러면 선생님 봐봐, 선생님 머리 짧지 바지 입었지 까만 옷 입었지 화장 안했지 그런데 여자잖아. 그럼 아이들이 1, 2초 정도 멍해져요. 그게 고정관념이라는 걸 실제로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봤을 때 비로소 느끼는 거죠.” (권사랑 대표)

“우리 자체가 좋은 교재입니다. 저학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선생님, 여자예요? 남자예요? 물어봐요. (웃음) 나이가 좀 든 아이들은 속으로 생각 궁금하긴 한데 실례니까 대놓고 묻지는 않다가, 한참 뒤에 슬쩍 말하구요. 그러면 그런 고정관념에 대해 얘기하려고 왔다고 얘기해요. 너희도 머리 짧게 자르고 싶으면 자르고, 바지 있고 싶으면 입어도 된다고 얘기하죠.” (서한나 편집장)

‘보슈’ 이후 대전에서는 페미니즘 소모임 활발해지고,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생겼다. 대전시에서는 청년 네트워크를 마련해 청년 100명을 모아서 청년 정책 관련 의견을 듣고 있는데 ‘보슈’ 팀은 여기서 젠더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활동해오면서 충남대, 카이스트, 배재대 등의 동아리나 여성인권 단체들의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각 모임의 장들에게 젠더팀의 팀원이 되어달라고 부탁 드렸고, 다른 단체들과도 전보다 자주 모일 수 있게 됐죠. 그 안에서 조금씩 정보가 오가고 있어요. 지방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기가 힘든데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보슈’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권사랑 대표)

“고무적인 것은 이번에 대전시에 성인지 담당관실이 새로 생겼어요. 담당관이 20년 넘게 대전에서 여성운동을 해오신 분인데, 형식적으로 일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뜻을 이해하면서 같이 가려고 하십니다.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서한나 편집장)

지난 6월에는 비혼 여성을 위한 재무관리 워크숍인 ‘통장정리’을 열었다. ©보슈
지난 6월에는 비혼 여성을 위한 재무관리 워크숍인 ‘통장정리’를 열었다. ©보슈

지방의 청년으로 느꼈던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찾다보니 ‘보슈’를 만들게 되었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만났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금의 방향을 정한 이들의 다음은 어딜까? 답은 ‘함께’에 있었다. 지방에 남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곳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지는 ‘보슈’를 더 멀리까지 데리고 갔다. 대전은 서울에 가기 위해 임시적으로 머무르는 곳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보슈’를 꾸려나가면서 대전의 다른 청년들과 함께 잘 살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상상의 힘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도 이어졌다.

“청년 참여 플랫폼이 대전에서도 열렸는데, 주최 측에서 말씀하시기로 저희를 보고 지방 청년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셨다고 해요. 전에는 지역에서도 설명회를 열어야지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보슈’의 활동을 본 뒤에는 지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고려하게 되었다고요.” (권사랑 대표)

“강원도 여성가족연구원에서 지역청년의 페미니즘을 주제로 토론회 여는데 저희를 불러주시고, 춘천 여민회에서는 10, 20대를 위한 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했어요. 원래는 서울로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익산, 공주, 대구처럼 다른 지방에서 더 공감해주시더라구요. ‘보슈’가 각 지방의 여성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화개장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서한나 편집장)

필자 이지혜 객원기자
‘텐아시아’, ‘맥스무비’ 등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썼다. ‘뜨거운 사이다’, ‘무비스토커’ 등의 방송과 지면을 통해 여성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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