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해봤습니다] 소비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하루가 가능할까
[직접 해봤습니다] 소비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하루가 가능할까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07.19 08:00
  • 수정 2019-07-17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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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해봤습니다]
걸어서 출근하고
고기,유제품 안먹어
타인의 노동과 일상 풍경 감사
출근길은 평소보다 멀었지만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출근길은 평소보다 멀었지만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14일, 평소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던 8시 20분보다 훨씬 이른 7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도보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의 출근길을 걸어가기 위해서였다. 흐린 날씨가 덥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출근길 편의점에 들러 16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는 것이 일과여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앞에서 아차, 하고 돌아섰다. 오늘마저 실패하면 3일째 실패였다. 소비하지 않는 하루 살아보기.

“과연 인간과 자연은 친화적인가? 보통 자연과 교감한 경험을 사람들은 여행에서 이야기 합니다.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하루를 한 번 시도해보세요.” 지난 6일 가배울연구소에서 열린 살림페미 아카데미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의 강의 취재 때 들은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여성, 환경, 동물에 대해 취재를 하며 ‘소비’는 항상 주요한 키워드였다. 소비 후 나온 각종 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과 기후변화, 육류 소비 조장과 뒤에 가려진 공장식 축산제도, 패스트패션과 개발도상국 여성 등에 대한 노동 착취 등은 늘 주요한 이슈였다. 이김에 해보기로 했다. 

소비하지 않는 하루를 살아볼 것을 맘먹고 규칙을 정했다. 첫째, 금전적 소비를 하지 않는다. 둘째, 타인의 노동과 금전을 빌리거나 착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손으로 기사를 쓰고 편지를 써보낼 순 없어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위해 전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별첨 규칙으로 노트북과 휴대전화는 예외로 뒀다. 

그러나 처음 시작한 11일 첫날 고비가 바로 찾아왔다. 갑자기 이동할 일이 생겼는데 걸어갈 수가 없었다. 12일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빌리고 있었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치즈는 어떡하지? 한참 고민하다 보니 나중에는 야채를 먹어도 되는지까지 고민이 됐다.
치즈는 어떡하지? 한참 고민하다 보니 나중에는 야채를 먹어도 되는지까지 고민이 됐다.

 

시도 3일째, 다행히 교통수단을 이용해 먼 거리를 나갈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점심시간 예상치 못한 고민이 시작됐다. 치즈와 고기를 먹을 것인가? 점심으로 미리 배달해둔 샐러드를 가져와 먹는데 하필 치즈가 있었다. 인간의 노동은 당연히 빌리지 않는데 동물에게서 나온 우유와 살점은? 먹지 말자 결론 내렸는데 또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기르는 고양이가 먹는 고기가 든 사료는 착취가 아닌가? 그럼 기르는 물고기가 먹는 장구벌레는? 장구벌레는 착취당한 게 아닌가? 혼란이 끝이 없었다. 

커피도 마실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메리카노를 직접 사서 마시는 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니 회사에서 텀블러에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스턴트 커피 앞에 가자 망설이게 됐다. 남북위 25도 일명 ‘커피벨트’의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착취에 관한 것들이었다. 결국 물을 마셨다. 

결국 기르는 고양이에게 닭고기가 듬뿍 함유됐다는 사료를 챙겨줬다.
결국 기르는 고양이에게 닭고기가 듬뿍 함유됐다는 사료를 챙겨줬다.

쉬울 거라 생각했다. 가방은 에코백을 들고 면으로 된 옷을 입었으니 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가방을 정리하는데 그때 본 내 지갑은 하필 가죽 지갑이었다. 기르는 고양이와 물고기를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육식성 사료를 챙겼다.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자 직접 만들었지만 맛없는 자두잼과 과자 말고는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기와 계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체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을 통해 내가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또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다른 생명체를 의식 없이 착취해 왔는지 돌아보게 했다. 회사 1층의 데스크에서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과 외할머니가 담가 보내주신 김치들에 녹은 노동은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고기와 계란, 예쁘다며 날 위한 선물이라고 산 가죽 지갑은 또 동물의 것이었다.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잉소비를 반성하는 미니멀리즘이 3,4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무조건 소유’를 반성하는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구입하고 적게 갖는 대신, 가진 것의 의미를 최대한 누리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기본 토대다.

미니멀리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완전 자립’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자리한 비전화공방은 기성 제품을 소비하는 대신 직접 물건을 만들고 야채 등을 재배해 수확한다. 손수 만든 물건을 쓰고 수확한 농작물을 먹으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는 힘을 경험한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비전화카페는 직접 키운 유기농 농작물로 만든 식음료를 판매하고 아예 전기까지 쓰지 않는다. 카페 건물까지 공방 소속원들이 지었다. 

비전화공방의 사람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비전화공방
비전화공방의 사람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비전화공방

 

소비하지 않는 하루를 제안한 장필화 교수는 “소비 이면에는 무수한 착취와 돌봄이 화폐를 매개로 지표화 돼 보이지 않을 뿐”이라며 “자신의 소비를 들여다 보고 꼭 필요해서인가 돌아보고 무의식적인 과잉소비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소비와 착취를 멈춘 자리에는 여유와 깨달음이 찾아왔다. 항상 대중교통으로 지나치던 출퇴근길에 작은 꽃 한 송이, 조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늘 편의점에서 즉석식품을 사서 먹곤 했지만 식사를 위해 직접 엉성하게 야채를 다듬고 밥을 푸는 동안 일상적인 노동을 잊고 살았었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평소보다 하루가 피곤했지만 돌이켜 본 하루는 아무것도 더 가진 것 없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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