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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꼴라쥬(핀란드의 대표적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위한

기념비)

7월 18일(금)

이틀 전에 가장 긴 밤을 겪었던 우리는 이번엔 가장 긴 낮을 보았

다. 새벽 3시경에 벌써 눈이 떠졌다. 창밖이 대낮처럼 환하다. 밤이

란 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닐까.

국토가 남북으로 길다랗게 생겼기 때문에 이 나라의 백야는 남부와

북부가 다르다고 한다. 지금 같은 한여름, 북부에서는 약 70여일 동

안 태양이 지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겨울이 되면 한 네다섯 시간

정도만 태양이 보이고 북부에서는 50여일간 태양이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받은 첫인상은 친근감이었다. 그들이 쓰는 언어는 스칸

디나비아어계의 언어가 아닌,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했다. 좀 딱딱하

고 무뚝뚝한 느낌이었는데, 어쩌면 먼 조상이 우리와 닿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호텔 욕실 바닥이 따끈따끈한 온돌로 되어

있었다. 이 점이 더욱 반가움과 친근감을 솟게 했다.

사회복지관

훌륭한 체육관까지 갖추고 있어서 장애인 농구대회를 비롯한 각종

체육대회까지 치를 수 있는 양로원을 찾았다. 무의탁 노인의 양로원

이 아닌, 일반 노인들이 즐기고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

었다. 공놀이를 하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 그들은 염색

공예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옛날 직조기 앞에서 옷감을 짜느라고

땀을 흘리기도 했다. 관람석 2백여 개를 가진 극장에선 음악회, 연

극, 영화의 모임이 번갈아가며 열리고 깨끗하고 따끈따끈한 사우나

시설, 드넓은 식당, 꽃과 음악이 어우러진 휴게실 등...

이 모든 것이 노인들에겐 완전 무료라는 것이다. 이런 시설이 헬싱

키에만도 10여 개나 되어 이 도시에 살고있는 노인들을 다 수용하고

도 남는다고 한다. 노인들은 천진난만해 보였고 씩씩하고 힘찼으며

생존 경쟁이나 아이들의 등록금 걱정, 퇴직 걱정 따위는 모르고 늙어

온 것 같았다. 할 일 없이 공원을 헤매거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

려 자살을 하는 소외되고 고립된 노인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다.

암석교회

1969년 건축가 Suomalainen이 제작한 거대한 암석을 뚫어 만든 교

회, 교회임을 알려주는 표시는 나무로 된 심플한 십자가 하나뿐, 교

회라고 하기보다는 예술적으로 꾸며진 UFO의 내부로 들어간 느낌이었

다. 내부의 둥근 천장 반지름이 13m라는데 동 13톤을 들여서 설계한

빗살 사이로 햇빛이 끌어들여지고 있었다. 햇빛이 없는 밤에는 돛?

모양이 둥근 달이 되고, 햇빛이 있는 낮에는 빛나는 태양이 되는데,

우리가 이 심플한 교회 내부를 방문했을 때는 천장이 온통 하나의 태

양이 되어 빛살 줄기를 찬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벼룩시장

오래된 접시 몇 점, 손때 묻은 주머니칼, 누군가 입었던 때묻은 드

레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보석함, 그을음이 그냥 남아 있는 램

프, 닳아빠진 수놓인 가죽신, 줄 끊어진 바이올린... 도대체 이런 것

들을 누가 사 간다는 것인지... ‘여행중에 신기한 물건을 만나 비싼

값을 치르고 사가지고 돌아왔더니, 웬 귀신 딱지 같은 물건이냐고 마

누라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더라’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한 물

건들을 땅바닥에 늘어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린다. 여기 이 벼룩

시장은 1990년 소련이 망하면서 시작된 불경기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

라고 한다. 자기집 물건을 들고 나와 팔기도 하고 물물교환식을 하기

도 한다는 것이다.

시벨리우스 모너먼트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 계속적으

로 외압을 받아온 나라다. 1917년, 미국 윌슨 대통령의 약소 민족 자

결주의에 힘입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1백년간을 러첸팀?압제하에

있었고 그 이전 역사는 거의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민족혼을 잃지 않고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던 설화, 전

설, 시 등을 모아서 민족문학으로 집대성하였다. 그것이 바로 ‘칼레

발라(Kalevala)’. 이 칼레발라야말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이루어낸

민족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자랑거리인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애국적 교향곡 ‘핀란디

아’도 이 ‘칼레발라’의 정신이 그 주제인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공원은 널찍한, 그저 우리나라 뒷동산 같은 잔디밭이었는데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조각 작품과 그의 거대한 데드 마스크가 맑은

호수를 바라보며 은색으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이인호대사 관저

이번 여행 목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 유일한 여성 대

사이신 이인호 선생님을 만나보는 기쁨이었다. 그분이 어떤 학식을,

또 어떤 인격을, 어떤 감성을 또 어떤 뛰어난 능력이 있는 분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핀란드는 국회의원의 30%가

여성인데 국회의장도 여성, 시장도 여성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를 舅訣嗤?우리가 그분을 만나고자 했

던 것은, 그분이 그저 우리나라 최초의, 현재 유일무이한 여성 대사

였으므로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남성에 비해 제대로 처우를 받아보지

못한 한국 여성으로서 그분을 통해 모두 대리 만족 같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대사 관저로 가는 길은 넓고 푸른 호수를 끼고 있었다. 호숫가에 드

문드문 지어진 아름다운 별장들은 모두 선착장과 요트를 가지고 있었

다. 가끔 물새들이 푸른 물결을 박차고 갈대숲 사이로 하얗게 떠오르

는 모습은 그야말로 서양적 신선의 경지 같았다. 정말이지 이런 평화

롭고 아름다운 나라엔 국회의원, 시장만이 아니라 각국 대사들도 거

칠고 투쟁적인 남성 대사들보다는 자상하고 아름다운 여성 대사이어

야 만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왔다.

잔잔하고 맑은 호숫가, 죽죽 뻗은 싱그러운 나무 그늘속, 새하얀 이

층집이 우리 대한민국의 주 핀란드 대사 관저였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강대국들의 관저에 비해 모양새로나 규모로나 조금도 손색이 없

어 보였다. 옛날 어느 나란가 여행을 왔다가 골목길 구석에서 ‘대한

민국 대사관’이란 조그만 간판을 찾아냈던 일을 기억해내고 ‘우리

나라도 이제 국력이 많이 신장되었구나’ 하고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

낄 수 있었다.

대사님은 이 나라의 호수처럼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맞아주

셨다. 그리고 관저 내부부터 소개해주셨다. 전체적으로 한국적이면서

도 모던한 분위기였는데 가구나 벽에 걸린 그림 한장 한장에서도 자

상한 손길의 흔적과 높은 격조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빙 둘러앉

아 국제 정세며, 이 나라의 특징이며 민족성, 여성문제, 인간관계 등

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질문도 해 가며 격의없이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에 우리는 그분이 높은 예술적 감각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알

았다. 근래에 그분이 하시는 여러 가지 일 중 특기할 만한 일이 두

나라간의문화, 예술의 교류였다. 그래서 우리 문화 예술과 핀란드 문

화예술의 교류를 위해 많은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이날

오후에 방문하게 될 엘리아 샤리넨의 ‘건축가의 집’도 그분의 추천

이었다.

또 특기할 일은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별안간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인호 대사가 계신 이 핀란

드의 병원에서 말이다. 대사님의 주선과 지극 정성으로 천만 위험했

던 사태를 해결하고, 우리가 귀국할 때 수술받은 분도 함께 귀국할

수가 있었다. 대사님에게 진 신세가 참으로 컸다.

무릇 모든 일에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각국에 파견되는

대사도 그저 벙어리(외국어를 못하는) 간판 대사가 아닌 전문성을 지

닌, 고도의 감각으로 순발력있게 대처할 수 있는 대사가 필요한 시대

다. 앞으로 전세계에서 국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일 우리의 여성

대사들에게 기대를 걸면서 우리는 쏟아지는 오후 햇살 속으로 관저를

나왔다.

건축가의 집

아침에 헬싱키 관광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우리나라 서울 역사를 연

상시키는 나즈막한 붉은 벽돌집을 만났다. 1914년에 지어진 건축가

엘리아 샤리넨의 작품인 헬싱키 역사 건물이었다.

이 나라에선 정치가 누구누구, 재벌 누구누구라는 말은 일체 없다.

대신 웬 유명한 건축가가 그리도 많은지, 웬 유명한 건물이 그리도

많은지, 가는 곳곳마다 저 건물은 누구의 작품으로 백여 년에 걸쳐

아직도 지어지는 중이고, 저 건물은 누구의 작품인데 혹평을 받아 건

축가 자신이 자살을 했다는 둥, 저 건물의 특징은 무엇인데 그래서

별명이 무엇이 되었다는 둥...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건축가

누구누구의 이름을 달고 다녔다. 이 나라만이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모두 건축가와 건물에 대한 자랑

과 그 소개로 지새울 지경이었다. 마치 건축가만이 인생의 성공자이

고 그들의 작품인 건축물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예술이라는 듯했다.

물론 덕분에 서로 경쟁이라도 벌이듯 이 나라들에는 역사적으로 건축

학이 발달해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헬싱키의 역사를 설계, 건축한 그 유명한 엘리아 샤리넨이

직접 설계하여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여생을 보냈던 ‘건축가의 집’

을 보러 갔다.

비트라스크 호숫가를 배경으로꼭 무대 예술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

은 외관부터가 범상치는 않았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찬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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