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철 나는 곧잘 대중목욕탕에 가곤 한다. 목욕을 한 뒤의 홀가분한 느낌도 좋지만 뿌연 수증기가 가득한 시끌벅적한 목욕탕에서 관찰하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들 또한 즐거운 볼거리다. 그렇게 목욕탕을 다니던 어느 날,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출입구 계산대 앞에 붙어 있는 문구를 보고는 배꼽을 잡고 웃고 말았다.

‘5세 이상 남아 여탕 출입금지!’ 빨간 매직으로 큼직하게 씌어진 글씨였다. 가끔 목욕탕 안에서 성숙한(?) 남자아이를 보고 움찔한 적이 있었던 걸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나왔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오빠와 같이 대중목욕탕을 다녔던지라 남아에 대한 큰 거부감은 없지만 몇몇 손님들이 항의라도 한 모양이다.

문득 어렸을 때 엄마 따라 목욕탕을 다니면서 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족이 함께 목욕탕을 갔을 때 왜 오빠랑 엄마만 따라 갔을까? 나는 왜 아빠 따라 남탕에 가면 안 될까? 지금 생각하면 엉뚱하지만 그 때는 꽤 진지했다. 언제부터 어린 아들은 엄마 따라 여탕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린 딸이 아빠를 따라 남탕에 들어가는 것은 엉뚱한 행동이 돼 버렸을까?

목욕탕에서 큰 소리로 울어대는 아이를 붙들고 목욕시키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육아의 책임이 어머니들 즉, 여자에게 있음을 느낀다. 여성의 지위가 지난날보다 많이 향상됐지만 성차별적 분업은 여전한 듯하다. 아니 출산과 육아를 책임지고 집안을 돌보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요즘은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직장인으로서의 여성을 요구하고 있어 오히려 부담이 더 늘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3중 부담 안에서 여성들은 역할에 대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내려온 관념에 의하면 주로 남자들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공적 영역에 머물러 있고, 여성들은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사적 영역에 있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면서 집안일과 같은 사적인 일을 하찮게 생각하고 공적인 일을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져왔던 분야에 침범(?)한 사례는 많으나 남성이 여성의 영역에 진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따라 집안일과 직장 일 모두를 여성이 떠맡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사회는 노령화되고 있는데 출산율은 점점 떨어져 노동력 부족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 출산 장려를 위해 여러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수퍼우먼이 아니고서야 육아·가사·직장 일을 다 감수하면서 아이를 낳으려는 여성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남자아이가 엄마만 따라 목욕탕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없어질 때쯤 우리나라도 낮은 출산율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오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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