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리뷰]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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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5년 우리 말에 함의된 성차별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계집팔자 상팔자?〉를 펴내 여성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언어학자 강주헌 씨가 이 책의 개정판과 동시에 새 책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황소걸음)를 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주로 호적 문제, 배우자 상속 문제, 정치 참여 문제 등 현실적 차별을 철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면 이 두 권의 책은 언어학을 성차별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것은 이러한 공통적 논의와는 다르게 두 권의 책에서 판이하게 달라진 시각의 전환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7년 전 〈계집팔자 상팔자?〉의 서문에서 필자는 ‘경제적, 사회 정치적인 권리를 얻었다고 해서, 여성이 심리적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부터 ‘남성의 부속물처럼 취급받는 여성을 언어적으로 해방시킴으로써 좀 더 근본적인 여성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한다’는 도발적 선언을 했었다. 이 책에서 ‘여자’라는 낱말 대신 ‘여성’을 고집했던 그가 새 책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에서 이제 여성이 아니라 여자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슨 이유일까?

그는 ‘여성’이란 낱말은 남성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전혀 차별을 발견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용어’로 그 속엔 인간의 냄새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여자’라는 낱말은 남자에 비해 차별받는 존재를 뜻하는 ‘사회학적 용어’이나 여자라는 존재가 지닌 본연의 역할을 담고 있기에 더 적합하다는 게 그의 사상 전환의 이유다.

그는 “여자가 느끼는 성차별이 애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지나치게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고 밝히며 우리말 속에 내포된 성 역할을 제대로 깨달았을 때 진정한 의미의 성차별이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살림하는 어머니, 오목한 아내, 현명한 딸 등에서 세세하게 거론된다. 수레를 예로 들어, 앞에서 끄는 아버지는 가정이 나갈 방향을 지시하는 향도(嚮導)고 뒤에서 미는 어머니는 가정을 움직이는 동력(動力)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어원인 ‘엄’이 생산자인 ‘암’을 넘어서 뒤를 의미하는 ‘업’과 관련되는 과정을 제시하며 “위대한 사람은 누구나 그랬듯이 스스로의 역할을 과시하지 않는 어머니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애초에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평등할 수가 없었다. 사냥을 하는 남자와 아이를 키우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이 기본적으로 달랐다”고 못 박는다. ‘차이에 의한 역할분담으로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내를 비하하는 낱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마누라라는 낱말도 어원 ‘마노라’를 살펴보면 ‘오라’는 대문을 가리키는 옛말로 집안의 가솔들을 위해 집안 대소사를 앞장서서 챙기는 으뜸가는 여인이란 뜻이라고 말한다.

그가 새로이 발견한 ‘여자’는 집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다리며, 남자라는 식물을 살게 하는 생명의 에너지인 해이고, 밥을 짓고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로 표현된다. 과거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가정에서 맡았던 본연의 임무를 우선하는 여자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전업주부’라는 한자어의 사용을 거부한다. “이 신조어는 사회활동을 하는 여자에 비추어 가정의 여자들에게 일종의 소명의식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여성단체에서 만들어낸 낱말” 이라 지적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책임지는 여자’라는 뜻의 전업주부가 가정에서의 여자의 책임을 냉소적으로 비하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추락시키면서 여자의 역할을 물리적인 것으로 한정해버린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살림살이’를 추천한다. ‘살이’의 어원 ‘사르다’는 여자가 남편과 자식의 사기와 용기를 되살려준다는 뜻으로 주부라는 낱말과 달리 ‘살림살이’는 가정을 책임진 여성의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는 매 장마다 예부터 내려오는 여자 본연의 역할에 대해 끊이지 않는 찬사를 보내는 반면 기존의 여성학에 대해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 기존의 여성학이 교육받고 깨인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언어가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의식을 반영하고, 의식을 인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관점에서 성 차별적 사회가 그러한 언어를 탄생케 한 것인지, 아니면 태생부터 지니게 된 성의 차이가 성 차별적인 언어를 만든 것인지는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윤혜숙 객원기자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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