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 여성세계 그린 감독 ‘도로시 아즈너’ 평가전
하층 여성세계 그린 감독 ‘도로시 아즈너’ 평가전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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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9일까지 로스앤젤레스의 UCLA대학 빙극장에서 열리는 ‘감독 도로시 아즈너’는 초창기 할리우드의 유일한 여성감독이었던 도로시 아즈너(Dorothy Arzner·1900~1979)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회고전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는 전환기인 1929년에 자신의 데뷔작이자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첫 유성영화인 <와일드 파티(원제 Wild Party)>(1929년 작)를 만든 아즈너는 1943년 감독으로서 은퇴하기까지 14년 동안 16편의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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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할리우드의 역사는 남성들, 특히 거친 남성들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마복에 말채찍을 들고 영화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세실 B. 드밀,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는 존 포드 같은 감독들이 남성적인 세계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어서 감독이라면 곧 독재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시대에 도로시 아즈너는 부드럽고 언성 한번 높이지 않으면서도 배우들로부터 최고 연기를 끌어내 전성기 시절 여배우 스타메이커로 명성을 얻었다.

소년 같은 짧은 머리에 늘 남장으로 촬영에 임한 도로시 아즈너는 그러나 철저하게 여성들의 세계를 스크린에 담았다. UCLA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12편의 영화 모두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며, 또한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여성들간의 우애와 신뢰를 앞세웠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이 철저히 여배우들의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면서 남녀간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아즈너의 영화는 놀라운 시도들이다. 아즈너의 영화들에서 클라라 보, 모린 오하라, 캐더린 햅번 등 여배우들은 마음이 통하는 여감독을 만나 맘껏 편하게 자신의 최고 연기를 해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아즈너의 데뷔작인 <와일드 파티>는 1920년대말 재즈와 춤, 그리고 자유분방한 사교를 추구하는 소위 ‘신여성’들이 화제를 불러모았던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스텔라(클라라 보)는 기숙 여자대학의 졸업반이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고 학교의 규칙을 어겨가며 밤새 파티를 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여대생이다. 당연히 영화는 기숙사라는 여대생들만의 공간을 주무대로 삼고 있는데 여기에 미남 인류학 교수가 부임하면서 스텔라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스텔라와 친구들간의 우애, 특히 가난한 여대생 헬렌을 위해 스텔라가 자신의 장래를 내던지는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교수와의 사랑 역시 스텔라가 화려한 외적인 허영보다는 내적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로 그려진다.

모린 오하라와 루실 볼이 주연한 <댄스, 걸, 댄스(Dance, Girl, Dance)>(1940년 작)는 밤무대에서 남자관객들을 위해 춤을 추는 무희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 영화 도중 모린 오하라가 관객들을 쳐다보면서(영화 속 남성관객과 동시에 영화관객들도 똑바로 쳐다본다) “그래, 당신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일 테지만...”하고 항의, 비판하는, 당시로서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매우 급진적인 장면이 나온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즈너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향이 여성들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고, 여성들 중에서도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하층 계급 여성들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큰 특징으로 꼽힌다.

아즈너는 주류영화인 할리우드 제도권 안에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70년대 페미니즘 영화이론가들에게서도 그리 큰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 90년대 이후 남성지배적인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감독생활을 하면서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일구어냈다는 점을 인정받아 재평가되고 있다.

UCLA 영상자료원이 조디 포스터 등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복원한 12편의 아즈너 작품을 상영하는 이번 회고전은 로스앤젤레스전이 끝나면 북미 순회전에 나설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박남옥 등 초창기 여성감독들의 작품을 복원, 재평가하는 작업이 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스앤젤레스 = 이남(영화평론가, USC 영화학과 박사과정)

도로시 아즈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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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으로는 〈댄스, 걸, 댄스〉와 〈와일드 파티〉.

상업적 할리우드 감독으로서 도로시 아즈너의 경력은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나쁜 건강은 그녀가 동시대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기회를 가로막았다. 아즈너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주의를 끌 만한 주제를 다뤘고, 7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발견됐다.

남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아즈너는 편집자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1927년 〈상류사회 여자들 Fashions for Women〉로 데뷔한다. 이후 파라마운트의 첫번째 유성영화 〈와일드 파티 Wild Party〉(1929)를 감독한다.

아즈너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공헌은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은 시간, 예산, 특별한 장르 등 할리우드 시스템 내부에서 제작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녀는 고전적 할리우드 메뉴인 ‘여성들의 영화’를 감독했지만 단순한 장르와 다르게 지배 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식으로 내부로부터 할리우드의 정설에 도전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댄스, 걸, 댄스 Dance, Girl, Dance〉(1940), 〈강한 크리스토퍼 Christopher Strong〉(1933)는 직업을 통해 독립성을 찾으려는 여성을 묘사했고, 〈우리는 즐겁게 지옥으로 간다 Merrily We Go to Hell〉(1932)와 〈크래그의 아내 Craig’s Wife〉(1936)는 지배받는 위치로부터 탈출하려는 여성을 묘사했다. 아즈너의 ‘좋은 여자’는 남성들의 욕망과 그것에 갈등하는 욕망을 함께 가지고 있고, 아즈너의 전략은 이런 반대되는 욕망을 통해 나타난다.

<자료·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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