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이행방안 제안…보수언론 ‘딴죽’ 극심

‘현장 여론을 잘 살피라.’

출범 한 달을 맞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임채정)에 보내는 여성계의 당부다. 초기 일부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딴죽걸기에 흔들렸던 인수위가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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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가 여성정책 과제를 내놓고 있지만 실현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달 16일 열린 여성계 대표와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 위원들의 간담회.

<사진·민원기 기자>

인수위는 잇단 국정토론회를 거치면서 여성정책 과제를 정리한 상태. 공식 과제로 채택된 게 아니라 각 부처의 정책과제들을 모은 정도지만, 새 정부 여성정책의 윤곽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가 ‘실사구시적 과제’를 내라고 지시했지만, 여성정책 분야에선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여성계의 목소리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최근 여성분야 정책제안서를 인수위에 건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여성계가 요구한 정책제안과 그동안 인수위가 낸 대책을 견줘 다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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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분명히 해야

▲여성정책 목표=생활에서 실현하는 양성평등. 여연이 제시한 여성정책의 목표다. 인수위가 만든 국정과제에도 양성평등 사회 구현이 명시돼 있지만,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할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차별금지법 같은 제도로 우선한다는 게 인수위의 생각이다.

여성관련 법·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는 이유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떨치지 못한 탓이라는 게 여성들의 판단이다. 생활 속 성평등의식을 높이기 위한 생활개혁운동, 미디어·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운동을 펴자는 게 여연의 첫 번째 제안이다.

정부 정책에 양성평등 관점을 넣으려면 젠더예산·젠더분석 방식을 과감히 도입하자는 지적이다. 여성부 안에 각 부처의 성주류화 정도를 분석·평가하는 부서를 둬 예산의 입안·집행·평가 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이 유지되는지 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여성노동자는 특별한 경우에만 임시·일용직 고용을 허락하고 관련법을 고쳐 현장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것도 여성계의 주요한 요구다. 아울러 여성의 가사노동, 자원봉사 같은 ‘무급노동’도 정부가 현실적 평가기준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호주제 폐지=노 당선자는 1년 안에 호주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인수위와 여성부의 구상은 좀 달라 보인다. 호주제 폐지 3단계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인데, 폐지 뒤 대안이 ‘가족별 호적편제’ 정도로만 나와 있다. 그나마 여성계가 주장하는 1인1적제와는 다르다.

여성계 여론 살펴야

인수위는 유림 등의 반대여론을 잠재운 뒤 관련법을 고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친양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중이나, 이것도 올바른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여성계는 호주제 폐지와 1인1적제 같은 대안을 함께 명시하는 법안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보육 강화=국공립시설 확충, 차등보육료 도입, 방과후 보육 등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마련돼 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전면 개정이어서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개정에 소극적인 여당이 걸림돌이 되온 게 사실이다.

노 당선자가 보육문제 해결을 중요하게 강조한 만큼, 올해 상반기 안에 법 개정을 끝내야 한다는 게 여론이다. 올해 예산 예비비로 보육교사 대체인력과 연장보육시설의 야간보육교사 인건비를 지원하자는 것도 여성계의 주문이다.

특히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방과후보육의 경우,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지적도 있다. 여성들은 그러나 급한 문제인만큼, 영유아보육법부터 고치는 대신 대상연령, 시설기준 등을 명시한 자세한 시행령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수위는 장애아와 만5세아 무상보육(9만1000명)을 올해부터 전면 실시키로 했다. 0∼4세 아동은 소득수준에 따라 보육료를 차등지원받고, 지원대상도 2008년까지 79만6000명(올해 11만9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영유아보육법도 올해 안에 고친다는 계획.

영유아보육법 연내 개정 여론

맞벌이 가정의 보육문제를 풀기 위해 휴일·시간제 보육 등 다양한 서비스도 구상하고 있다. 여성부·보건복지부 등이 ‘참여복지실천 5개년계획’에 맞춰 추진할 전망이다.

▲여성 노동자 차별=2000년 8월 현재 여성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여성계는 당시 임시직 규제와 비정규직 균등처우를 뼈대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청원했지만, 여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되레 학습지 교사, 골프장 보조원 등 특수고용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

여성계는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기구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상위기구는 노동위원회나 국가차별시정위원회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여성일자리 50만개 창출 공약은 인수위가 분야와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상태. 지역 사회복지, 공공서비스 분야 직종을 개발하자는 주문이다. 정보통신 분야도 여성에게 유망한 쪽이다.

▲성매매 방지=국회에 성매매처벌및방지에관한법률안이 처벌법과 보호법 2개로 나뉘어 계류중이다. 국회의원 84명이 발의했지만 여야 모두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은 탓이다. 여야가 당론으로 정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라는 주문이다.

아울러 국무총리실 아래 성매매종합대책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다. 여성부, 법무부, 행자부, 노동부 등에 흩어져 있는 업무를 한데 모아 성매매방지 종합정책을 수립하고 각 부서의 성매매방지 업무를 조정하는 기구다. 기구는 비정부기구와 손잡고 성매매와 인신매매 실태 및 범죄방지와 피해자보호, 기소와 법률집행에 대한 상황 등을 매년 조사하고 국회에 보고하는 등 업무를 맡는다.

성매매종합대책 기구 설치를

성매매 범죄 전담수사반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성매매는 전국에서 자행되지만 관할지역과 해당부서를 중시하는 현재 경찰 관행으로 수사에 한계가 있는 탓이다. 성매매 범죄를 제대로 아는 수사관과 각 과가 합동으로 수사를 벌일 수 있는 전담종합수사반을 만들자는 얘기다.

▲여성부 확대·강화=노 당선자 공약대로 여성부가 보육업무까지 하려면 차등보육료제 도입을 위한 소득파악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자료를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여성부 이관을 반대하는 이유다. 짧게는 복지부 자료를 여성부에 넘기면 되고, 길게는 소득파악자료를 모으는 국세청을 통해 정보를 얻으면 된다는 게 여성계의 복안이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여성정책 전담기구가 여성부와 손 잡고 보육업무를 맡으면 훨신 효율적이란 지적이다.

▲임기 내 여성정책 과제=여러 여성폭력 관련 상담소를 묶고, 재정지원이 급하다는 여론이다. 긴급전화 1366, 성폭력상담소, 가정폭력상담소, 장애인성폭력상담소 등으로 흩어진 기관을 경찰·병원과도 연계하자는 것.

폭력 피해자 자녀들이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아도 전학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주문도 있다. 피해자의 정신과 치료처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조정하고, 자녀를 보호시설에 맡길 수 있도록 예산도 배정하라는 지적이다.

성차별 방송 ‘삼진아웃’ 도입

성차별 방송 프로그램도 여성계가 뜯어고치자는 분야 중 하나다. 방송법에 양성평등이 명시돼 있는만큼, 방송위원회 안에 ‘여성분과위원회’를 두고, 성평등 가이드라인에 따라 프로그램을 모니터하자는 제안이다. 여성인권을 침해하거나 성을 상품화하는 프로그램은 ‘삼진아웃’시키자는 것.

평화운동에 공이 큰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일정책에 반영키 위해 평화·통일분야 심의기구에 50% 여성 할당을 하자는 주장도 공감을 얻고 있다. 남북 여성교류를 활성화하고 통일 뒤 여성정책을 마련할 수 있게 행정·예산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저소득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원책은 노 당선자가 공약하지 않은 취약부문. 여성계는 가내노동자 보호제도와 여성 친화적 자활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대상을 늘리고, 최저임금의 50%이상 급여를 늘리라는 주문도 함께다.

여성의 독립적 노후생활을 위한 연금제도도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재혼 때 연금 분할권을 인정하고, 유족·노령연금을 각각 100%, 50% 주도록 연금 병급제도를 고치라는 주문이다. 노동시장에서 퇴직한 경우 일정기간 연금보험료를 국가가 대신 내는 ‘연금 크레디트’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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