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 혼전 속 ‘노풍’ 위력
대전 - 혼전 속 ‘노풍’ 위력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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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 민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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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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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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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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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전 분위기는 부산과 판이했다. 많은 곳에서 ‘노풍’이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막강한 ‘터줏대감’이었던 이인제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은 민주당 탈당 뒤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 명함도 못 내미는 신세가 돼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동층도 적잖은 듯 보였다.

대전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따돌리고 있다는 분석은 서울의 두 후보 진영 모두 인정하는 눈치다. 노 후보쪽은 부산의 열세를 이 곳에서 만회할 요량으로 공을 들이고 있고, 이 후보쪽은 이인제 대행의 협력을 전제로 막판 전세역전의 교두보로 대전·충청권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전 시민들은 단호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한다”는 식이다.

7일 낮 대전역 광장.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이 거리운동에 한창이었다. 노란 옷을 받쳐입고, 가요 개사곡에 맞춰 춤을 췄지만, 마침 내리는 겨울비 탓인지 가까이 구경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역사 처마 밑에 수십명 정도 청중이 모여 있었다.

“이인제? 그러다 몰매 맞는다”

중학교 교사인 김경태(47·둔산동)씨는 “유세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았는데 우연찮게 오늘 직접 보게 됐다”며 대전의 분위기를 “많은 사람들이 노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민련 표밭이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지역 특성상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이번 대선은 전과 달리 유권자 반응도 제각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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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씨

대전역 뜨내기들도 김씨와 비슷한 말을 했다. 김씨의 조언을 따라 중앙시장을 찾았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문을 연 상점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길가 노점·좌판들은 아예 포장도 안 걷었다. 실물경기가 좋지 않은 건 부산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20년 전통 삼계탕집 ㅌ식당에 들어갔다.

“이회창이유? 아들 군대 안 보내고, 며느리는 미국 가서 아이 낳았다면서유. 우리 외아들 군대 3년 갔다 왔슈. 외국 가서 애기 낳는 며느리 얻을 생각 없수. 왜, 미국 가서 대통령 하지.” 사장 이영자(50)씨가 다짜고짜 욕부터 내질렀다.

“이인제유? 제 입맛 따라 요리 붙었다 조리 붙었다 허는 꼴이 그게 사람이 헐 짓이유? 만약에 또 다른 당에 붙어 나오면 충청도 사람들헌테 몰매 맞을거유, 필시.” 남은 사람은 노 후보뿐이다. “우리 같은 서민 대변한다고 하대유. 그거 하나로만 봐두 속이 든든하우. 그래서 난 노무현 찍을껴.”

선입관 때문일까. 대전 사람 같지 않은 그의 입담이 되레 기자를 당황케 했다. 그 뒤로도 이씨의 열변은 계속됐다. 재래시장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시장통 사정을 아는 사람이다, 귀족같이 산 사람이 서민들 속을 어떻게 알아주냐 등등. 하나 둘 사람이 모였을 땐 날이 저물어 버렸다.

이웃의 순대국밥집 사장 김귀례(50)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 망쳤다고 누가 그러대. IMF 몰고 온게 누군디 그러는겨. 한나라당 아녀. 이회창씨가 경제 살리겠다고 하면 어불성설 아닌가유.”

노무현 ‘대세론’ 실감

김씨도 말이 길어졌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말 우리같은 시장 장사꾼들부터 살려야 혀. 우리가 죽으면 소비자는 사는감? 같이 죽는겨.” 부산에서 하나같이 이회창 후보 지지를 말했던 중장년층이 대전에선 노 후보 편이었다. 중앙시장엔 밤까지 발길이 뜸했다. 대포집에도 객은 하나 둘이었다.

대포집에서 만난 박태호(60·가명·서구 갈마동)씨는 요즘에도 가끔 중앙시장을 찾는단다. 젊은 시절 이곳과 유성, 신탄진, 금산 등 대전 인근 5일장을 돌며 사업을 했던 탓이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 중앙시장은 “완전히 죽은 목숨”이란다.

“경제는 실물이 중요하고, 실물은 시장이 출발이라. 시장이 죽으면 경제도 죽는겨. 왜 대통령 후보들이 이걸 모르는지 모르겠어.”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되뇌었다. 대형 할인마트가 득세하고 백화점이 성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

“그걸 신자유주의라고 하지.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자기 나라 사람 죽이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거 아녀? 그렇게 따지면 권영길이여. 노동자, 서민을 진짜 대변하는 사람은 권영길 밖에 없어.”

국제경제까지 술술 읊는 품이 심상찮다. 아뿔사! 나중에 들으니 김씨는 경제학박사를 아들로 뒀단다. 그런데 그 아들, 한국에서 일자리가 없어 일본으로 갔단다. “오죽 박사 실업자가 많으면 사회문제까지 됐겠어. 실업도 큰일이여.”

시장이어서 그런가. 모두들 경제평론가 뺨친다. 서울에 명동, 부산에 서면이 있다면 대전은 중구 은행동이다. 은행동 입구로 오니 사회당 김영규 후보 유세가 벌어지고 있다. 운동원들을 빼면 사실상 청중은 없었다. 물어도 “그냥 보는 것”이란다. 운동원도 청중도 서로에게 낯선 풍경 같다.

약진하는 권영길

충남대생 김상욱(25)씨는 “사회당의 지향은 너무 앞선 것 같고, 민주노동당의 공약이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갖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권영길 후보를 찍을거냐’는 물음엔 “권 후보는 얼마나 득표하느냐가 중요할텐데, 나는 당선 가능한 후보를 찍고 싶다”고 답했다.

노풍이 거세다 해도 이 후보 지지성향의 유권자가 없진 않다. 공무원과 중장년 이상 세대가 많이 사는 서구 둔산동이나 중구 오류동 쪽은 대전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조금 달랐다. 장년층들은 대부분 부산처럼 즉답을 피했지만, 내심 ‘안정’을 찾는 경향이 강했다. 8일 그 쪽을 둘러봤다.

둔산동에 사는 임아무개씨(33)는 “다른 사람들이 다들 젊은이는 노 후보 지지라고 하는데 모두 그런 건 아니다”며 “보수성향이 짙긴 하지만, 이회창 후보도 여러 면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당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임씨에게 ‘이인제 대행이 이 후보쪽으로 가면 어떡하겠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며 “되레 표도 떨어지지 않겠냐”고 답했다.

오류동에 사는 유영자(60)씨는 “노 후보는 젊으니까 다음에 해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대전의 50∼60대 유권자들도 역시 부산이나 다른 곳 동년배들과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 부산과 대전의 공통점, 이번 대선이 ‘세대간 대결’ 양상으로 간다는 점이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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