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맛을 알기까지, 세월이 걸릴걸?

기대했다가는 반드시 코 깨진다.

‘혹시나’ 했다가 번번이 ‘역시나’에 걸려 들고 만다. 그러니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지혜롭다. 얼마 전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게 신상에 이로우니 별 수 없지 않은가. 내 나이 40줄, 그것도 내리막길이다. 그러니 슬슬 건강을 염려해야 할 나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열받는 밥집’ 이야기다.

공룡만큼 큰밥집이나 새발같이 작은밥집이나 흔한 인사말, ‘어서 오세요’ 소리는 이민간지 오래다. 게다가 멀뚱히 사람구경을 한다. 대부분의 풍경이다. 밥집뿐만 아니라 일반가게도 거의 다 마찬가지다. 하도 이러니 어쩌다 도심처럼 친절한 가게주인을 만나면 놀라운 눈으로 나도 멀뚱히 구경한다. 멀뚱히 구경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아예 상대도 하지 않을 때는 불쾌한 감정이 스멀거리고 상황에 따라 울화가 치밀어 미치고 환장하기도 한다. 용인사람들의 이 ‘띵한 표정’에 질려 한때는 가까운 분당을 이용했다. 중이 떠나야지 별 수 있을까. 미치고 환장해 봐야 나만 손해니까.

마치 ‘용용 죽겠지?’하는 심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개업하는 가게도 마찬가지다. 친절한 건 당일 날 흥겨운 ‘도우미’들 뿐이고 주인은 띵한 표정과 태도의 연속이다. 글로벌시대에 이 무슨 일인가, 아무리 개탄해도 소용없다. 이럴 때마다 화나서 머리에 김이 뽈뽈 솟았다. 혹시 용인에 오셨다가 머리에 김이 난 채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거든 전 줄 아세요.

신기한 일은 용인사람들 대부분은 아무도 이런 사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그러려니 대체로 문제삼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 내가 우스운 모양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서서히 띵한 분위기에 익숙할 무렵 가슴이 쿵! 소리를 내는 일을 겪었다. 밥을 먹다가 열무로 만든 물김치 맛이 일품이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밤참으로 국수 말아먹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주인이 대수롭지 않게 좀 주겠단다.

궁금하세요? ‘좀 주겠다’는 양이 얼마 큼인지. 놀라지 마세요. 부모가 자식한테 퍼 주는 양만큼 합디다.

말로만 듣던 시골인심을 느끼는 순간이다. 물김치 뿐일까. 용인의 가게들은 얄팍한 상혼은 모른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이번 홍수로 고생하는 지역에도 용인의 많은 사람들이 팔 걷어붙이고 다녀온 건 물론이다. 강원도로, 충청도로, 경상도로 향하는 발걸음이 지금까지도 줄을 잇고 있다.

투박하고 무덤덤한 속내의 깊은 맛을 알기까지는 세월이 걸리는 곳이 용인이다. 사람냄새가 그리운 분은 용인으로 오세요! 쿵! 쿵! 가슴속 울림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혹여, 용인에 왔다가 코 깨졌다면 아직 세월이 부족하구나, 생각하시길… 머리에 김이 난 채 돌아다니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는 걸 아시길…

박남http://myhome.naver.com/nam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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