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
여성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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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시간강사 시절 한 여성강사가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고 화가 났던 적이 있다. 여성이 비록 연구실적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집안 살림하랴 애 키우랴 이중부담 때문이니 사회적으로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여성을 교수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학력일수록 여성은 결혼하기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직장 구하기도 힘들다. 여성강사들이 교수가 못되는 것은 출산과 육아로 실력을 쌓을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교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의 차별 때문이다.

여성이 직장을 잡기 어려운 것도 실력이 부족하거나 직업정신이 남성만큼 투철하지 않아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국가고시와 같이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거나 예체능 분야처럼 대중에 의해 실력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곳에서는 여성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특히 세계화와 함께 사기업들이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것도 여성의 능력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업의 생사가 권력과의 관계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실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보다는 공무원과 끈이 닿는 특정학교 출신을 채용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세계화와 함께 기업이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능력 위주로 인재를 선발할 수밖에 없게 되니 다수의 여성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능력위주로 기업을 운영했던 다국적 기업이 유난히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개방적인 분야나 집단일수록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양궁, 사격, 골프 등 여성이 두각을 드러내는 스포츠는 우리나라가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만나 부실은행을 정리할 때에도 다수의 여성임원이 움직인 외국계 은행은 건재했다.

그러면 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게 배타적인 조직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는 그 조직이 경쟁을 하지 않아도 생존이 보장되는 경쟁의 무풍지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조직이 공기업과 대학이다.

최근 여성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기업 여성인력 비율이 12.3%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IMF 구조조정 이후 남성직원은 18.5% 감소한 데 비해 여성은 37.1%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의 여성할당제가 무색하게도 여성채용에 앞장서야 할 공기업이 오히려 여성을 외면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기획예산처는 13개 공기업 대부분이 총자본회전율과 총자본 영업이익률 등 실질적 경영지표가 공기업 개혁 시작 전인 1997년에 비해 대부분 후퇴했다고 발표했다. 공기업의 장을 임명할 때마다 낙하산 시비가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이미 예견된 결과다. 공기업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보다는 선거 후 떡고물 나누는 자리로 인식되는 한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여성에게 배타적인 것도 결국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한 학생들이 교수를 보고 학교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이름만 보고 진학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즘은 국내외 언론에서 대학의 등수를 매기면서 대학총장이나 지도부는 우수한 교원을 채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교수는 전공이 매우 세부적이고 실력을 가늠할 사람이 극소수인지라 학과에 채용을 일임할 수밖에 없다. 많은 교수들이 박사들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라며 평생 같이 생활할 동료이니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막상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료교수가 아니라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조교를 뽑겠다는 것이다. 결국 연구 잘하고 학생 잘 가르치는 교수의 본질에 충실하기보다는 많은 대학이 인맥이나 기부금과 같은 비본질적인 요인에 따른 정실인사를 한다. 얼마 전 실시한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47.5%의 응답자가 교수채용이 불공정한 편이라고 했고 31.8%는 매우 불공정하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일 교수의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라면 박사학위를 줄 필요도, 학술지 게재를 위해 논문심사를 할 필요도 없다. 교수들이야말로 누가 실력이 있고 없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변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남의 실력을 변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력이 아닌 다른 요인을 교수채용에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는 것은 스스로의 전문성을 모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실인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계급이나 차별이 인류역사에서 시작된 것은 재화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희소가치를 나누는 데서 발생하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재화의 분배에 참여하는 인간의 종류를 제한한 것이다. 노예제, 인종이나 지역, 피부색깔, 성에 따른 차별, 왕따 등이 모두 궤를 같이한다. 이렇게 보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집단이 더 차별을 한다는 나의 주장이 이해가 갈 것이다. 자유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사람이 전통적인 차별에 안주해서 경쟁을 약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교수를 보면 대부분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남자라는 것 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한다. 많은 학과에서 여성교수를 뽑기로 미리 결정을 하지 않는 한 여성지원자의 서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거나 여성이 객관적 조건에 의해 상위권에 들어오면 조건을 조작해서라도 여성을 합격권 밖으로 밀어내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집단에 먼저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 얼마전 서울대 여교수회는 국립대에서 먼저 여교수 채용할당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고 정운찬 총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할당제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보호장치가 아니라 경쟁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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