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 일을 왜 굳이 들춰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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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제522차 정기 수요시위가 있던 지난 21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김순덕 할머니(82)는 침착하고 또렷한 모습이었다. 마침 하남고, 경화여고 학생 34명이 란 제목으로 ‘역사와 인권을 위한 평화교육캠프’를 2박3일 간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도 동참한 이날 시위는 북적거리는 분위기였다. 단정한 차림의 김 할머니는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나온 것이 뿌듯해 보였다.

“학생들이랑 나눔의집에서 같이 자고(할머니는 현재 나눔의집에서 생활 중이다) 떡도 만들고 목걸이도 서로 나누고 했어. 학생들한테 위안부 대리체험을 시켰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느끼게 해 주려고… 여학생들은 대번 울음이 터져요. 나눔의집에 방문하는 일본사람들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선 자기네들이 미안하다고 해요. 그런데 일본정부는 왜 아직인지.”

공부하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소원에 나눔의집으로 찾아온 선생님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는 故강덕경 할머니와 함께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작품활동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림 그릴 때 기분이 편하시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묵묵부답. 그러나 표정에서 할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읽혀진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10년 넘게 다닌 할머니들의 작품전시회 덕에 이젠 일본정부도 입으로는 사과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 진상규명과 배상을 회피하는 현실이 할머니는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 9·11 테러가 났을 즈음 전시회를 위해 뉴욕에서 체류했던 할머니는 노심초사했다.

“여기저기서 왱왱거리고 사람들이 까무라치고 난리가 나는 걸 보면서 한국으로 다시 오지 못하는 줄 알았어.”

임시 간호원으로 차출되는 줄 알고 중국 남경까지 가 3년여간 고생하다 스스로 목을 매 자살기도까지 했던 할머니의 눈엔 또 다른 전쟁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일제에 의해 우리 여성들이 희생당한 것이나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나 마찬가지 논리라고 말한다.

극단 한강이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중인 연극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 포스터는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못다 핀 꽃>이다. <못다 핀 꽃>은 자신들의 꿈을 채 피우기도 전에 사그라든 조선처녀들을 상징한다. 그밖에도 할머니 작품은 일제에 의해 끌려가는 흰 저고리의 조선처녀를 표현한 <끌려감> 외에 <집에 가는 길> <만남> <버섯공출> 등 응어리를 표출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붓끝은 한없이 투명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한다.

“시위하다 보면 길 가던 사람들 중에 다 지나간 일을 왜 굳이 들춰내느냐고 흉보는 이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쫓아가서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예요.”

일본인 변호사, 교사 등이 친구가 돼 10여년 전부터 일본 정부의 사과받기 작업을 도와주고 있고 방학을 맞아 나눔의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 교사도 있다니 힘이 절로 난다. 전시회 때문에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 많지만 몸이 불편한 관계로 일본엔 강일출 할머니가, 미국엔 이옥선 할머니가 대신 가 계시다. 며칠 후 나눔의집에서 금강산 관광을 떠난다는 할머니는 아기처럼 설레 보이기도 했다. 고추며 옥수수며 농사일에 그림 그리기로 하루를 지내는 김 할머니는 요즈음 나눔의집 다른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고 있다. 몸이 아파도 매주 수요시위만큼은 꼬박꼬박 챙기는 김 할머니, “몸이 아파도 할 건 해야지”하며 굳은 결의를 내보인다.

“특히 아시아에선 전쟁이 꼭 없어져야 돼. 전쟁 나면 여자, 특히 처녀들이랑 아이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보지…”

하고 싶은 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본정부는 진상을 규명하고 하루 빨리 사과하라!”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기자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던 할머니가 하루 빨리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웃음을 되찾을 날을 기대해본다.

이박재연 기자 reviv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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