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소프트 엔딩을 꿈꾸는 아줌마

이제 5학년인 둘째딸은 내가 보기엔 통통하고 키가 약간 작고 또 귀엽고 튼튼하며 활기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데 세상에… 벌써부터 몸매 걱정이 한창이다. 게다가 친구들이 동글이라고 놀린다며 아프리카로 이민을 가겠단다. 아프리카에서는 뚱뚱해야 미인축에 든다며.(허걱)

이런 딸아이를 데리고 지난 주말 제4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관람했다. 몸에 대해 내가 하고픈 말들을 타인(안티)의 입과 몸을 빌어 딸에게 대신 해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튼튼함을 건강한 미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날씬함을 넘어 말라깽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라고 강요당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의 생각을 위협하는 미인대회에 맞서 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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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여성대회(3.8 여성대회/안티 미스꼴야/월경 페스티발)를 찾아다니며 세상은 TV에 나오는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님을 아이의 가슴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안티 축제에서 솔직히 시상결과는 맘에 안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하는 휠로빅스가 대상을 탔는데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난장이의 뜀박질을 대상으로 뽑았을 거 같다. 나의 심사기준은 페미니즘 마인드가 있는가를 보는 것인데 최소한 그에게는 그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의 전체 분위기는 열광 그 자체였다. 나의 두 딸은 시종일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나도 그랬다. 딸들을 데리고 안티 축제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번 안티 축제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여성의 몸으로 돈을 벌어들이던 거대 산업 미스코리아 대회가 올해부터 드디어 공중파에서 사라진 것이다. 방송 3사의 중계권 포기는 큰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후원을 했다간 안티들의 불매운동으로 기업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음을 그들이 눈치챘다는 뜻이다. 안티들의 불매운동은 바위에 계란 던지기였지만 시대 흐름을 읽는 기업들은 하나둘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99년도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LG생활건강, MBC문화방송, 금강개발 현대백화점, 에이스침대, FILA KOREA, 한주여행사, 드봉화장품, LG뷰티센타, LG백화점이 미스코리아 대회를 주최했고 협력했다.(작년 자료를 찾지 못해 99년도 자료를 참고 함) 한편 이번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후원사는 LG전자, 삼성생명, 대한항공, 삼성다맛, 한국마사회, 서울우유, OB라거, QUA, MARKS&SPENCER, Nassau, 수빈아카데미, Jollysea.com, 박금자 산부인과, 매일우유 강서지점, 코카콜라, 여자와닷컴이었다. 우리는 끝까지 기억한다. 어떤 기업이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했는지를! 또 어떤 기업이 이것을 깨는 데 동참하는지를!

<어느 안티미스코리아의 반란(고은광순 저)>을 읽고 감동받았던 큰딸이 홀에서 우연히 저자를 직접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고은광순님의 따뜻한 격려는 큰딸의 청소녀기 성장 시절에 큰 힘이 될 것 같아 기쁘다. 또 태평양을 건너 먼길을 온 세계적 신학자 정현경 교수가 소개한 특별한 운동법(섹스를 잘하자^^)도 인상적이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데리고 간 게 눈에 띄어서였는지 여러 방송사에서 인터뷰도 했다. 즐겁고 신나는 축제였다. 아이들은 방송에 자신의 인터뷰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며 들떠 있다.

요즘 부모들은 현장학습이다 체험학습이다 해서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 길이 바쁘다. 내년엔 딸의 손을 잡고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관람하길 권한다. 기억해 뒀다가 꼭! 세상을 바라보는 눈, 몸을 바라보는 눈, 특히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는 눈이 달라지리라 믿는다. 나는 벌써부터 9월에 열린다는 월경 페스티발이 기다려진다. 초경이 코앞에 닥친 딸에게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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