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현/원불교 여성회장, 광운대 교수

“한국의 결혼한 여자인 아줌마는 나이를 가릴 것 없이 지저분하고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분노를 감출 줄 모른다.”

위 글은 영국의 BBC라디오 방송의 한 채널에서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을 소개한 여러 표현 중 하나로 어느 일간지에 보도된 글이다. 이 보도에는 한국인의 개고기 식성, 피지배 경험 그리고 심지어는 영어학습 광풍까지 소개돼 있다.

읽자마자 기분 나쁜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인지상정이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줌마를 이런 시각으로 보는 것은 BBC방송 기자뿐일까?

공무원이나 건설회사 등 민원을 다루는 부서의 남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아줌마들이라고 한다.

아줌마를 흉보고 아줌마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여성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미시’라는 간지러운 단어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처녀같아 보이고 싶다는 여성들의 안간힘과 이를 이용한 상술이 함께 만들어낸 단어다.

나름대로 모두 아름답고 정갈하던 젊은 미스들을 아줌마로 전락시키는 계기는 결혼과 출산 두 가지다. 그런데 지저분하다든가 분노를 감출 줄 모른다는 것은 출산으로 인한 몸매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왜 아줌마들은 이렇게 스스로도 부정하고 싶을 만큼 바뀌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남성들에게 답을 묻는다. 오늘날의 그대들이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아줌마들은 그대들의 어머니요 아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적 개인적 역경을 견디며 그대들을 낳고 길러서 오늘날의 신사를 만들어준 것은 아줌마들이다.

그대들의 모습과 아줌마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것은 아줌마들의 희생이 컸음을 의미한다. 자식하고도 아들들인 그대들을 우선적으로 먹이고 입히고 신사로 만들어 내놓기 위해서 아줌마들은 고운 옷을 기꺼이 접었다.

아줌마들의 남루함은 이제 그대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리고 예나 이제나 역사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부조리에 교양있게 대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험하고 힘겨웠다.

보라! 이즈음 그대들이 만들어놓은 그 수많은 법조문들로 해결하지 못하던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아줌마들의 아우성으로 고쳐지고 있지 않은가! 분노는 생존권의 표출이다.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은 간사함을 모르는 정직함이다.

세상의 아줌마들이여 기죽지 말자!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죄다 끌어내 놓고 더 솔직하게, 더 시끄럽게 떠들어서 아줌마들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가자.

우리 아줌마들도 교양있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품위있게 살수 있게 될 때, 그때가 좋은 세상이다. 그때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오늘 우리는 더 맹렬하게 살자. 아줌마들이야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억센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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