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며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자취생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친구들이랑 밤늦게까지 오랫동안 놀고 싶은데 12시안에는 집에 가야 한다는 마음속의 권고를 느낄 때이다. 부모님이랑 함께 사는 사람들 중에 밤에 놀다가 귀가시간으로 맘 졸여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부모님의 재량이 달려있는 일이므로 아마 부모님이 엄격하지 않은 사람은 귀가시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주위의 많은 여자친구들이 남자형제에 비해 귀가시간의 제약을 더 많이 받는 모습을 본다. 아들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면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믿거나 경고를 하는 정도지만 딸은 외박은커녕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크게 혼난다. 경고하는 강도와 믿음의 정도가 다르다. “계집애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는 말을 안 들으면 다행이다.

술을 마셔도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어서 들어오라는 재촉에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지만 남자아이들은 그런 재촉을 받는 것 같지는 않고 심리적으로도 덜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어떤 축제에 가서 친구들이랑 거하게 뒤풀이를 하고 있는데 집에서 얼른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고 집에 급하게 갔다가 부모님이 쿨쿨 주무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 기억이 있다. 일찍 들어오라는 성화가 그냥 성화를 위한 성화, 재촉을 위한 재촉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내가 부모님의 소유물뿐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딸을 강하게 단속(?)하는 데에는 여자한테 밤길은 위험하다는 것과 여자는 바깥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사실 밤길이 무서운 건 사실이다. 등을 꼿꼿이 세우지 않고 밤길을 다녀본 여성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과 딸을 ‘믿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마치 여자에게 성폭력 당하고 싶지 않으면 옷을 껴입고 다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자도 지각능력이 있는 성인인데 설마 자기 상황 하나 추스르지 못하겠는가 말이다. 놀다가 재미없으면 알아서 집에 일찍 들어갈 수도 있고 밤늦게까지 놀다가 친구 집에서 잘 수도 있는 것이며 즐거운 일이 있으면 밤을 새면서 놀 수도 있는 것이다.

친구랑 밤새워 놀려면 아예 날잡고 엠티를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나와야 한다. 그런 거짓말은 하는 사람도 맘이 불편하다. 부모님들이 딸을 좀더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라보고 믿음을 주셨으면 좋겠다.

유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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