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소재로만 하면 무조건 재미있는 것일까? 그리고 재미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일까? 신간 <여자사용설명서>는 몇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퍼진 엽기 코드와 그 안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가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자들에게 귀싸대기 맞기를 각오한 책’이라고 스스로 밝힌 <여자사용설명서>는 여성을 철저하게 상품화하여 남성들에게 여성을 인격이 없는 물건으로 대하고 잘 사용하라고 부추긴다. 여자를 사육하는 방법, 여자를 폐기처분하는 방법, 여자를 포획하는 방법, 여자를 수리하는 방법, 여자의 포장을 벗기는 방법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80년대 중반 일본 데이터하우스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것.

출판사 대표 김정욱씨는 “사람들이 성을 이야기할 때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 개방적이다/폐쇄적이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리 출판사는 성을 이야기할 때 즐겁다, 재미있다, 엽기적이다, 골때린다 등의 표현을 쓰고 싶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머리만 좋고 상상력은 턱없이 부족한 이 땅에서 여자사용설명서가 전개하는 이 눈부신 실용적 상상력을 누군가는 성의 상품화니 여성비하니 하고 말할지 모른다. 한 페이지를 정독하고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지나친 페미니스트이거나 위선자 혹은 불결한 마초일 뿐이다”고 못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출판계에 제대로 된 성 전문출판사가 없는 현실을 문제삼으며, 제대로 된 성관련 서적만을 만들어내고자 제1탄으로 이 책을 번역출간했다는 출판사의 기획의도는 상당히 불순해 보인다.

이 책을 읽었다는 문모씨(남, 32세)는 “스포츠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이 책을 봤는데 철없는 중고등학생들이나 좋아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고 소감을 얘기한다. 또한 최모씨(여, 30세)는 “여성을 섹스용, 애완용, 돈줄용, 가학용, 실무용, 결혼용, 번식용으로 나누어 그 목적에 따라 사육하고 포장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내용을 읽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구나 직장여성은 장식품일 뿐이며 따라서 채용기준도 반드시 외모여야 하고, 추녀는 해외이민을 장려하고, 미인은 자유로운 연애를 금지해 추남과의 결혼을 금지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소송을 걸고 싶은 맘까지 일었다. 남녀차별과 연령차별, 외모차별 등 이 책은 지독한 편견과 차별로 가득한 공해물이다. 이 책을 위해 베어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고 강조해 말한다.

출판사측이 아무리 그럴 듯한 말로 변명을 해도 내용을 읽어볼 때 이 책은 선정적 표현으로 눈길을 끌어 돈을 벌고자 하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젊은층의 문화코드인 ‘엽기’와 ‘즐기는 섹스’ 개념에 맞추었다고 하지만, 그 즐거움을 여성과 남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엽기라면 무조건 재미있다는 건 그릇된 선입관이 아닌지 출판사측은 진지하게 재고해 봐야 한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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