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논란에 본인은 침묵

묵묵부답. 최근 자신을 두고 벌어지는 여성후보 논쟁에 대한 박근혜 의원의 반응이 그렇다.

그러나 여성계에서는 박근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부총재를 둘러싼 논쟁의 촉발제이자 진원지는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 최보은 씨의 발언이다. 최씨는 지난해 4월 <씨네21>을 통해 이른바 ‘희귀동물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며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을 작정이다. 멸종 위기의 동물은 그게 해충이라도 보호해야 하고…”라는 논리를 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근혜 지지’를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기는 껄끄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최씨의 발언에 대한 반응도 애초에는 미미한 듯했다. 그러나 탈당 후 미약하나마 박근혜의 대권 가능성이 점쳐지자 지지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는 여성들이 하나 둘 생겼다.

현재 이 논쟁의 핵심에는 진보적 여성주의자들로 일컬어지는 최보은, 김정란, 장정임 씨가 있다. 최씨는 지난 해 <씨네21> 칼럼에 이어 <월간 말>과의 인터뷰(3월호)에서도 역시 ‘희귀동물론’을 주장하며 “박근혜를 찍는 것이 진보”임을 내세웠다. 이에 상지대 교수이자 시인인 김정란 씨는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이며, 이는 곧 가부장제에 대한 지지를 뜻한다”며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여성문화동인 <살류쥬(http://www.salluju.pe.kr)>의 대표였던 장정임씨도 살류쥬 내에서 박근혜 논쟁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는 3월초 살류쥬 게시판에 ‘박근혜 지지론’을 올렸고 이 논의는 곧 살류쥬 내의 ‘박근혜 지지·반대론’ 논쟁을 일으켰다. 현재 그는 살류쥬 대표직을 사임하고 고문으로 남은 상태다. 장씨는 “대표직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 의견이 마치 살류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기 때문에 논쟁에 참여한 이상 대표직을 계속할 수 없어 사임했다”고 밝혀 앞으로 박근혜 논쟁에 계속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한편 한겨레 김선주 논설위원도 지난 해 동문 언론인 회보를 통해 최씨의 주장에 대한 간접적 지지를 표한 바 있다.

이렇듯 진보적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하나 둘 박근혜 논쟁에 가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여성단체들 입장에서는 공식적 입장을 드러내놓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박 의원 지지 여부를 두고 몇몇 여성단체 측은 일단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하지 않을 태세다. 일부에서는 “논의의 가치를 못 느낀다”는 강경한 반대의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입장표명을 꺼리기는 학계도 마찬가지다. 일부 여성 정치학자들은 “정치적인 입장을 나타냈을 때 내가 불러오게 될 파장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의견표명을 거절했다. 인터뷰를 시도한 한 대학의 사회학 교수도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다 여성인가”라는 말을 흘렸다. 박 의원의 여성의식을 꼬집는 말이다.

박근혜 의원 개인의 평가에 대한 질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와 여성문제의식에 대한 지적이 빠지지 않았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여성이 정치세력화해야 하는 이유는 현 정치의 판을 바꾸자는 건데 박근혜 씨가 그런 의지가 있는 여성인가”라는 우회적 표현을 통해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한국여성민우회 김상희 대표 역시 “지금으로선 관망하고 있는 상태”라면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권에 도전한다는 것은 과거 민주열사들에 대한 잘못이다”라며 박 의원이 풀어야 할 과제를 지적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부사장 박미라 씨도 “박의원은 빨리 정치 이데올로기와 여성 관련 정책에 대해 밝혀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현 상태로는 부정적이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수적 정치 분위기에 그저 무임승차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박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여성문제에 대한 미온적 자세’라는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박 의원의 이러한 멍에는 그에 대한 강경한 반대의 근거로 이어진다. 서울 모 대학의 언론정보학 교수는 “여성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이며 여성운동은 해본 적도 없는 박 의원을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지할 수는 없다”며 “아버지 후광으로 정계진출해서 대권운운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정치수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최보은 씨의 거듭된 발언으로 박근혜 의원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줌마네 대표 이숙경 씨는 “박 의원을 박정희의 딸이라던가 보수파의 대변인으로만 보다가 최씨의 발언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며 “그의 발언을 전적으로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성과 관련해 주의 환기시키는 기회가 된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당내 개혁을 외치면서도 여성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그간의 태도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보수적 남성정치세력,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는 결국 정치인 박근혜가 가진 모순이며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지은 기자 luna@womennews.co.kr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