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여성들이 행한 단 한번의 방어에 대해 정당방위가 아닌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해 10월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온 남편 신모씨를 살해한 아내 김모씨와 신씨의 친어머니(본지 제661호 보도)에게 지난 2월 8일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2년 6개월 및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또 지난 15일에는 작년 12월 칼을 휘두르며 폭행하는 남편을 저지하다 살해한 최모씨(본지 제 658호 보도)에게 징역 3년 및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김씨의 경우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생명의 가치를 따져봤을 때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씨 사건의 담당판사 역시 “(피고 측이) 정당방위 주장을 하고 있으나 남편 살해는 자신의 변호 방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건의 여성들은 모두 지속적인 폭력의 피해자였고 생명을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방어를 한 것이지만, 이러한 특수성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안양 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변현주 소장은 “가정폭력은 신고를 해도 ‘가정사’라고만 여겨 사건에 대한 별다른 조처가 내려지지 않는다”며 “극한 상황에 치닫게 되기까지 미온적인 대처를 해온 경찰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재판부도 문제”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명백한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임에도 사회통념 등의 이유를 들어 정당한 방어로 인정하지 않는 재판부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사건 발생 후 구성된 ‘김씨 구명운동을 위한 시민연대’ 및 ‘가정폭력피해자 최씨 구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최씨 대책위)’는 서명운동을 비롯해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피해 여성을 위한 구제 활동을 펼쳐왔다. 판결과 관련해 최씨 대책위 측은 “재판부가 최씨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최씨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는 무죄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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