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현주/'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http://antihoju.jinbo.net

“민족 대이동의 명절에는 그리운 어머니 품으로 갑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품으로 가지 못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며느리’라는 이름의 기혼여성들이 그들인데, 며느리들의 명절은 그리운 ‘어머니 품’이 아닌, 더 많은 ‘노력봉사’를 요구하는 ‘시어머니의 곁’이다. 배우자의 가족들을 위해 명절 음식을 장만하고 배우자의 조상을 위해 차례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다른 이름, 며느리.

그렇다면 온 가족을 위한 명절노동의 전담자인 며느리의 가족법적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의 호주제는 민법 984조를 통하여 남성과 아들을 우선으로 호주가 될 수 있는 순서를 정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현 호주의 아들, 손자, 증손자, 미혼의 딸, 미혼의 손녀, 미혼의 증손녀 순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쯤에 ‘호주의 부인’인 한 집안의 ‘며느리’가 위치한다. 또한 여기에 기혼여성을 남편의 집안으로 편입시키는 ‘부(夫)가입적(민법 826조)’이 가세하면서 ‘호적 상의 시집식구’인 맏며느리뿐만 아니라 둘째, 셋째 며느리까지 시집사람을 만들어 명절의 ‘노력봉사’를 강요한다.

게다가 명절을 비롯한 제사, 시집식구 대소사 등에 투입되는 며느리의 노동은 또 다른 ‘성씨 다른 며느리’가 대를 이어 물려받지 않는 한 헤어나올 길이 없다.

“며느리를 보아 제사도 물려주고 명절에도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쉬겠다”는 어머니와 “부인을 얻어 어머니께 효도하겠다”는 남성들의 얘기에는 그들도 모르는 호주제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말이 좋아 새며느리에게 가풍을 익히게 하는 것이지 사실은 ‘내’가 벗어나기 위해 다른 여성을 시집식구를 위한 노동에 끌어들이는 잔인한 시스템인 호주제는, 두 사람의 며느리를 싸우고 갈등하게 만든다.

이러다 보니 아들을 낳기 위해 기를 쓰던 며느리가 그 아들을 통해 남성권력을 얻게 되면, ‘오래된 며느리’인 ‘시어머니’가 되어 자기보다 약자인 다른 며느리에게 때론 가혹하게, 때론 무의식적으로 그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는 생존과 현실적인 이익 앞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대면시켜 갈등하게 만드는, 제도가 만들어 낸 ‘여여(女女)싸움’ 해소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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