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한국영상원 교수.영화 평론가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말로 5년 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이혜경 집행위원장의 발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 당시엔 약간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소위 세계화 시대, 영화가 여성에게 줄 수 있는, 또 여성이 영화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이상의 것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미국의 아프칸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여성주의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의 관심은 일제히 아프칸 여성, 그리고 이슬람 여성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방송되는 영상자료라곤 폭탄을 투하하는 미군사기와, 참호에서 대공 미사일을 쏘아대는 알 카에다 뿐이었다. 가끔 등장하는 부르카를 뒤집어 쓴 아프칸 여성은 이슬람의 억압받는 여성의 전형적 이미지로 제시된다.

미국의 부시와 영국의 블레어의 부인들은 갑작스레 국제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어 아프칸 여성들을 원조하자는 정치적 제스쳐를 보였다. 서구의 우월성은 억압받는 비서구 여성들의 이미지를 통해 여전히 확인된다. 이 와중에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일별할 수 있는 귀중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라와(Rawa)라고 알려진 아프간 여성단체의 활동이다.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아프칸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무참히 살해 당하는 장면을 몰래 찍은 라와 액티비스트의 영상기록이 배급되면서 부터다.

또 다른 계기는 모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라는 영화를 통해서 주어졌다. 마흐말바프 가는 이란의 영화 가족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모센만이 아니라 어머니, 딸들, 아들들이 모두 영화를 만들고 있다. 딸과 아들은 일반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연 영화 학교를 다닌다.

다큐와 픽션 양식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이 가족들의 영화 중 <칸다하르>는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프칸 여성 나파스가 자신의 자매를 찾아 이란을 거쳐 아프칸의 칸다하르에 들어가려는 이야기다.

이란에서 아프칸의 국경 지대 사막을 넘으려는 순간, 나파스에게는 부르카가 주어진다. 이제 눈 주변에 뚫린 작은 구명 사이로만 세상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부르카를 걷을 때면 뜨거운 사막의 햇살은 마치 처형이라도 내리는 듯 그녀의 눈을 순간적으로 멀게 만든다.

길 위에서 그녀를 도와주게 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성의 희망이란 언젠가 남자에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나파스의 희망은 그것이 아니다. 자살하려고 하는 자매를 구하고, 녹음기에 자신의 여정과 견해를 기록해 외부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희망은 칸다하르를 눈 앞에 둔 지점에서 유예된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과 세계를 기록하는 것은 사실 동시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성폭행이나 불평등 고용, 여성 호주제 등의 문제 그리고 구조 재조정 시 여성 노동자들을 먼저 해고하는 것 등을 볼 때 나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기록하는 영상집단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상징적, 물질적 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찾아간 뉴스팀들이 그들을 이중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그 여성영상집단은 <여성신문>과 같은 다른 여성 관련 매체들과 더불어 무엇이 뉴스가 될 수 있고 또 역사가 될 것이며, 기록하고 말할 가치가 있는지, 모든 세상의 질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조심조심 고민하면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기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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