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성평등 동화를 읽었더라면
[정진경 칼럼] 성평등 동화를 읽었더라면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8.08.20 23:56
  • 수정 2018-08-27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설공주 이야기의 진실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흑설공주가 권력욕 덩어리 헌터경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그가 폭력적으로 나오자 공주는 그를 걷어차 버렸다. 헌터경은 공주를 해칠 마음을 먹고 계모인 새 왕비에게 접근하여,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냐고 물으며 이간질을 시도했다. 공주를 사랑하는 왕비는 물론 흑설공주라고 하였고, 헌터경이 위험한 인물임을 감지하여 일곱 난장이들에게 공주를 잘 보호하라고 부탁했다. 헌터경이 공주를 납치하려할 때 난장이들이 공주를 구해내고 헌터경을 감옥에 넣어버렸다. 공주는 왕비에게 감사하며 사이좋게 살았고, 후에 마음에 드는 왕자를 만나 결혼하였다. 헌터경은 왕비와 공주에게 앙심을 품은 나머지 감옥 속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서 퍼뜨렸다고 한다.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이 동화는 우리가 여태 들어온 그 백설공주 이야기, 여자는 수동적이고 계모는 전처자식을 미워하며 여자들끼리는 사이가 안 좋다는 그 이야기를 통쾌하게 뒤집어 준다.

시시한 왕자를 차버린 엘리자베스 공주 

재미난 이야기 하나 더 보자.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공주로, 조만간 로널드 왕자와 결혼할 참이었다. 어느 날 용이 나타나 공주의 옷을 몽땅 불사르고 왕자를 잡아가 버렸다. 공주는 종이봉지를 주워 입고 왕자를 구하러 갔다. 공주는 지혜를 발휘해서 용의 힘을 다 빼버리고 왕자를 구해냈다. 왕자는 엘리자베스에게 탄 내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도 엉망이라고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오라고 했다. 공주는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라며 왕자와 혼인하지 않았다.

이십 몇 년 전, 내 조카가 대여섯 살일 때 나는 이 동화를 읽어주었다. 눈을 반짝이며 유심히 듣던 아이는 “그래서 결혼 안 했어?”하고 물었다. “응, 안 했어.” “나중에도 안 했어?” “응, 로널드 왕자와는 안 했어. 남자가 별로잖아.” “그럼 뭐 했어?” “글쎄, 아마 세계여행 가지 않았을까?” “으응...” 아이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전까지 들은 모든 동화가 “그리고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났으니까. 몇 주 후에도 우리는 엘리자베스가 무얼 하고 살았을까에 대해서 또 토론했다. 나는 별난 고모라서 아이의 창의성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 조카가 지금 세 살짜리 딸을 키우면서 성역할 고정관념을 키우는 동화만 많다고 걱정하기에, 성평등 동화를 찾을 수 있는 대로 죄다 사서 모았다. 페이스북에 누가 올려준 리스트가 있었는데, 절판된 것도 많아서 인터넷 헌책방을 샅샅이 뒤져냈고, 전국에서 날아오는 택배를 받느라 문지방이 닳을 지경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나이에 맞추어 하나씩 선물할 생각에 벌써 즐겁다.

나뭇꾼과 선녀, 알고보면 절도죄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다시 읽어본 ‘선녀와 나무꾼’은 어이가 없었다. 성폭력을 당연시 하는 남성우월주의의 이야기를 온 세상 아이들이 듣고 컸다니. 법적으로는 절도죄요, 약취유인죄에 해당한다고 최근 법원에서 밝혔다고 한다.

예전에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그런 성차별적 교육을 받고도 이만큼 됐으니 다행이다. 그치?”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만약 성평등 교육을 받았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멋진 인간이 됐을지 어떻게 알아?”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하네.”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딸과 손녀들까지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아들과 손자들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 계열 그림책

◆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지음

◆ 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먼치 지음, 마이클 마르첸코 그림

◆ 내 멋대로 공주. 베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비룡소

◆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 섀너 코리 글, 체슬리 맥라렌 그림

◆ 올리비아는 공주가 싫어! 이안 팔코너 글, 박선하 역, 주니어김영사

◆ 루비의 소원. 시린 임브리지스, 소피 블래콜 그림, 이미영 옮김, 비룡소

◆ 그레이스는 놀라워! 메리 호프만, 캐롤라인 빈치 그림, 최순희올김,시공주니어

◆ 과학자 에이다의 대단한 말썽. 안드레아 비티 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김혜진 옮김, 천개의바람

◆ 올리버 버튼은 계집애래요. 토미드파올라, 문지

 

페미니즘 동화

◆ 바보처럼 잠만 자는 공주라니! 이경혜 지음, 바람의아이들

◆ 흑설공주 이야기. 바바라 G. 워커, 박혜란 옮김, 뜨인돌

◆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 사계절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