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활동’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자유와 달콤함은 세대, 지역, 혼인상태, 장르, 생애주기별로 각기 다른 여성예술가들끼리의 다층적 결을 드러내기보다는 신비화하고, 어루만지기보다는 봉합한다. 이번 시리즈는 여성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간의 관계를 예술가 본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어보는 자리다.

 

 

윤결_창문과 음악이 없는 파티_전시 전경_2018 ⓒ윤결
윤결_창문과 음악이 없는 파티_전시 전경_2018 ⓒ윤결

여성예술가의 삶과 예술 ③ 윤결 작가

미술 분야에도 여성에게

주어지는 성역할 존재

미술작가는 흔히 ‘개인창작자’로 여겨진다.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술작가도 엄연히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이들 역시 ‘개인’에게만 원인을 전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일상에서 많은 여성작가들은 ‘불편함’을 감지하면서도 이를 공론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족으로 개인의 차원으로 해당 사안을 묶어두는 경우가 있다.

올해 33세인 윤결 작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며 수집한 이야기와 경험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최근에는 오랜 기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과의 경험을 사진, 회화, 설치 등의 작업으로 선보인 개인전 ‘창문과 음악이 없는 파티’(수유너머 104 복합공간 소네마리, 2018)를 개최했다. 이 전시는 여성억압적인 이슬람 사회를 한국사회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각화하여, 역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그렇다면 한국 여성은 얼마나 그같은 억압에서 빗겨나 있나?”를 질문했다.

고정된 성역할을 요구받을 때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은 불편함을 인지한다. 그렇다면 미술 분야는 일반사회에 비해 고정된 성역할이 주는 불편함에서 자유로울까? 윤 작가는 개인단위가 아닌 집단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 사업 등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미술 분야에서도 여성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정해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예를 들어 나도 제작을 할 수 있고, 무대연출을 할 수 있고, 기계를 다룰 수 있는데,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사업예산 정산, 전화연락 업무, 문자 돌리기 등 항상 앉아서 하는 행정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이런 성역할 구분은 ‘임금차별’이라는 예정된 결말을 준비해두고 있기도 하다. “이는 마치 가정에서 어느 순간 내가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일하고 있게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도 밖에서 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를 수 있고, 햇볕도 쬐고 싶지 계속 주방에만 있고 싶지는 않다”고 윤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이런 불편함을 경험했을 때 그는 ‘내가 예민한건가’, ‘내가 잘못된 건가’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이 지점은 예술 분야 여성들이 각자 느끼는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보다 적극적으로 서로 공유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윤 작가가 들려준 또 하나의 ‘일상 속 불편함’은 이름에 대한 것이다. 몇 년 전 윤 작가는 개인사정상 개명을 했다. 성(姓)을 어머니 성을 따라 변경하고 이름도 바꾸는 절차를 밟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굳이 엄마 성을 따르느라 성을 변경해야 했는가?’, ‘편한 대로 살면 될 텐데’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석이 아닌 공모전 인터뷰 심사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왜 엄마 성으로 성을 변경했는지 설명해야 했다. 공모전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전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창구 중 하나다. “취업 면접을 할 때 부모가 이혼한 사유를 묻는 면접관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내 심정이 그랬다”고 윤 작가는 말한다. 어머니 성으로 성을 변경한 이유는 “나를 어릴 때부터 쭉 책임지고 키워주신 분이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 성을 물려받음으로써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이는 윤 작가의 주체적 판단의 결과였다.

집단으로 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여된 정해진 성역할의 답답함, 개명이라는 업무와는 무관한 사적인 이야기까지 꺼내어 설명해야 하는 일상 속 ‘불편함’은 개인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부분들이 공론화되려면 여성작가들이 자신들의 불편함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윤결 작가

2010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하고 2015년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7년 ‘그날의 대화(플레이캠퍼스, 인천)’ 공연의 극본, 연출을 맡았고, 2013년 개인전 ‘계십니까’(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 문래동)를 치렀다. 단체전으로는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오십개의 방, 오만가지 이야기’(경기문화재단, 2014), ‘누락된기억, 어느 위안부할머니의 기억’(복합문화공간 에무, 서울문화재단, 2013),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레지던시프로그램: 예술이 노니는 마을’(인천문화재단, 2012), ‘그 ‘거리 distance’의 창의적인 자세’(금천예술공장, 2012)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