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나 영화감독은 참 좋겠다. 인간의 심리가 워낙 복잡 미묘해, 이야기를 해도해도 끝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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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의 관계만 해도 그렇다. 여성이라는 공동 운명체로 묶인 아름다운 관계 묘사가 있는가 하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겨 질투와 음모를 덧칠하는 머리 아픈 설정도 만들 수 있으니까.

마이클 스타인버그의 1998년 작 <위키드 Wicked>(18세, 콜럼비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 심리를 파고든다. 극단적인, 상식을 벗어난 인물 묘사와 사건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처럼 간단하게 닫아버릴 수 있는 사람은 교육으로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기인 인간사를 두 시간 내에 압축하려는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위키드>의 자매에게 돌을 던지기는 힘드니까.

잘 다듬어진 잔디로 둘러싸인 캘리포니아의 고급 주택가. 고등학생 엘리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에 짐을 싸들고 나가보기도 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등교하기도 한다. 각기 이웃집 백수, 가정부와 관계를 맺고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연히 부부 싸움이 잦다. 돌연 어머니가 살해당하자, 엘리는 어머니의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후 아버지의 늦은 귀가와 가정부와의 관계를 추궁하며 아내 노릇을 하려든다.

1992년, <워터댄스>로 데뷔하며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감독은 영리한 인용과 연출력을 보여준다. 그리스극의 희극과 비극을 상징하는 가면을 두 번의 살인 도구로 사용하며,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거기다 근친상간까지 끼어든다. 엘리가 가정부와 식사를 하며 살인을 상상하는 장면의 연극적 조명이나 아버지 결혼식에 참석한 엘리를 주변과 분리해내는 촬영은 무척 인상적이다. 살인 사건 수사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을 던지는 점도 <위키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화로 만들고 있다. 새빨간 루즈에 새빨간 노슬립 드레스 차림으로 아버지에게 와인을 따르는 엘리 역의 줄리아 스타일스는 이 영화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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