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넘어 ‘가족들’로] “두려움이었던 ‘선택’, 이젠 행복이죠”
[‘가족’ 넘어 ‘가족들’로] “두려움이었던 ‘선택’, 이젠 행복이죠”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5.21 10:10
  • 수정 2018-05-28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결혼을 통해 결합한 이성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가둬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the family)은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해 왔습니다.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다문화 가족, 1인 가족 등 ‘정상가족’의 틀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이웃에 존재하는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한국 정착 10년차 탈북자 이모씨

탈북 뒤 중국서 10년 보내

브로커 통해 남한 입국

‘내가 좋아하는 일’ 찾다

글쓰기 통해 행복 느껴

탈북자 80%가 여성

이들 상당수는 한부모

‘정상가족’ 범주 깨져야

 

삶은 선택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리는 점심 메뉴부터 직업이나 결혼 같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까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나아간다. 그런데 북한 경성에서 나고 자란 이모(45)씨에게 선택은 ‘공포’에 가까웠다. 이씨는 탈북자다. 그는 북한에서 25년, 중국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원하는 삶을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북한에선 부여된 일만 했고,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에 의해 부모님께 인사도 못한 채 북한 국경을 넘었다. 중국에선 또 다시 원치 않았던 중국 남자와 결혼 해야 했다. 생존을 위해 중국의 한국인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고, ‘남한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시집 어른의 성화에 서른 넷에 남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씨는 “하나원을 나와 혼자가 되는 순간, 뭘 해야할 지 몰라 눈 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먹고 사는 일 부터 문제 였다. 정착금 400만원 중 350만원이 브로커 비용으로 사라져 그의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이씨는 내게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 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며 “너무나 갈망하던 자유였는데, 선택이라는 단어가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그때부터 꼬박 2년을 앓았다. 원인도 없이 구토를 하고 온몸이 맞은 뜻 쑤셨다. 의사는 신경성, 스트레스성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고, 생계를 위해 다닌 공장에선 말과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게으르다’, ‘일하기 싫어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못했다. 핸드폰 부품 공장을 다니다 가방 공장으로 옮기는 식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이씨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니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주위에선 ‘그것도 못견디면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윽박 질렀고, 이씨는 스스로 ‘나는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고 좌절하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그의 삶을 바꾼 계기는 ‘글쓰기’ 였다. 우연히 다가온 글쓰기는 처음으로 그에게 주체적 삶이 주는 기쁨을 맛보게 해줬다. 이씨는 “한 작가님의 권유로 내 탈북 과정을 소설로 쓰면서 글자와 단어를 고르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선택의 과정이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특히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잘썼다’고 칭찬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주위 시선에 얽메이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일주일에 두 번만 출근하는 일을 찾았고, 잡지에 글을 쓰는 기회도 얻었다.

그는 지금 서울 하늘 아래서 딸(20)과 함께 살아간다. 중국에서 태어난 딸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이씨와는 멀리 떨어져 시집에서 살았다. 일년에 설날과 추석에만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딸은 이제 매일 아침 함께 눈을 뜬다. 워킹맘인 그는 “엄마라고 하기도 미안하다”고 말할 만큼 죄책감이 컸다. 돈을 버느라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차려준 적도 없고, 함께 놀아주지도 못해서다. 하지만 딸은 “날 한국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로 훌쩍 컸다. 무뚝뚝한 성격이 꼭 닮은 모녀지만 엄마인 이씨는 딸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인생은 혼자 가는 거야. 네 인생은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가 45년의 삶을 통해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지난해 입국한 탈북자 1127명 중 여성은 83.3%(939명)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미혼모나 한부모다. 탈북 뒤 성폭력 피해를 입거나 중국 남자에게 팔려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소위 ‘정상 가족’이 아닌 채 남한 생활을 시작하는 탈북 여성들은 탈북자이자 한부모 가족이라는 틀로 묶인다. 역시 한부모인 이씨는 “성실한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겠느냐”며 “소위 정상 가족이라는 범주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한에 남은 어머니, 동생과 아주 가끔씩 전화통화를 나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평화’가 너무나 간절하다. 언젠가는 어머니의 두손을 맞잡을 날이 올거라 믿는다. 이씨는 “고향에 남은 부모님을 볼 수 있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북한에 갈 수 있으면 그게 통일이든, 두 국가로 가든 방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통일은 간절하다”고 말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