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수직을 은퇴한 후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100여 년이 된 시골집의 본채는 너무 낡아 허문지 여러 해 됐고 작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 오려니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익숙한 많은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이별의 슬픔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이별의 슬픔을 다 감당하기 어려운데 스스로 이별을 고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골 생활을 동경하면서 실제로는 주저하게 된다. 주위 친인척과 친구들과 시골의 이웃들까지 모두 도심 한가운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어떻게 시골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해하고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살아가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 4년 차 시골살이의 비밀을 털어놓으려 한다. 

 

봄맞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겨우내 움츠리면서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뛰어나가 맞이하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춘분에 눈이 펑펑 왔다. 태풍에도 마구 흔들렸을 뿐 잘 견뎌낸 대나무가 여러 개 꺾여 있다. 지진 재난 문자가 올 때마다 ‘대나무 밭으로 뛰어가야 하나’ 궁리할 만큼 뿌리를 땅에 강하게 내리고 있는 대나무. 이 대나무가 가벼운 눈에 딱딱 소리를 내며 꺾이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수필집에서 눈에 넘어지는 나무와 관련된 대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이겨내고 몽우리를 맺고 피어나기 시작한 홍매화와 천리향 그리고 자목련이 눈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눈을 털고 피어날 것인가? 동백은 더욱 애처롭다. 붉은 꽃잎을 내미는 몇 송이 안 되는 동백이 눈 속에서 떨고 있다.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알려 주는 동백꽃이 올해는 유난히 봄을 힘겹게 맞이하고 있다. 지난겨울 추위에 동백 잎이 대부분 얼어 말라 떨어지고 있다. 또 몽우리도 얼어버렸는지 아름다운 핑크색을 감추고 있다. 다행히 바람을 덜 받은 뒤쪽 몽우리 몇 개가 색깔을 살짝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눈보라까지 맞았으니 꽃을 피울지 걱정이다.

동백은 마당을 정비하고 난 직후 재래종 한 그루와 개량종 두 그루를 심었다. 한 해 혹독한 겨울 추위로 햇볕이 덜 드는 한쪽이 얼어 무너져 내렸지만 잘 견디고 살아나 키가 훌쩍 자라났다. 동백나무는 마루에 가장 가까이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름에 이미 동백 꽃눈이 맺혀 있는 것이었다. 여름부터 가을을 지나 겨울을 견디고 겨울의 막바지에 봄이 무릇 익기 직전에 꽃이 피어난다. 아직 추운 날씨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동백꽃. 그리도 오래 준비해서 꽃을 피운 것이다. 예쁜 꽃만 쳐다보고 그 꽃이 지고나면 고개를 획 돌려버린 것이 부끄럽다. 오래 동안 꽃 피우기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소중하다. 그렇게 오래 준비했는데 제대로 피어날까?

 

겨울과의 작별로 분주한 시골

겨울은 작별하기 싫어 눈의 전령을 보냈지만, 시골에서는 이미 겨울과의 작별로 분주하다. 지난 가을 마당에 묻어놨던 무를 캐내는 것으로부터 겨울과의 작별이 시작됐다. 몇 개 남은 동치미를 꺼내 김치냉장고에 넣고, 독은 씻어 마당 가장자리에 엎어놨다. 또 그늘에 걸어놓은 시래기를 더 이상 그대로 두면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삶아서 껍질을 벗겨 봉지봉지 싸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광에 넣어 둔 양파도 싹이 나기 시작해 잘 다듬어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마늘도 광에서 꺼내서 깐 뒤 냉장고에 넣었다. 마늘은 더 이상 두면 속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텅 빈 껍질만 남는다.

그런데 이 양파, 마늘은 다 이웃들이 지난 가을에 준 것이다. 양파와 마늘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목돈을 쥘 수 있는 작물이다. 지난 가을에 심어 겨우내 땅에서 추위를 견디고 봄비를 맞으며 자라고 있다. 이웃들은 날씨가 따뜻해지고 오랜 겨울 가뭄 끝에 비가 내리고 나면 비닐 구멍을 비껴간 양파 싹을 올리고 잡초를 제거하느라 바쁘다. 마늘과 양파는 5~6월에 수확하는데, 나는 알맹이가 적어 시장 가치가 없는 것을 얻어먹는다. 크기가 작은 것은 귀엽고 피클을 만들기에도 적당하고, 주로 다져서 요리에 넣기 때문에 양파의 크기는 먹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양파 스프는 내가 좋아하는 스프여서 아낌없이 넣고 해먹는다. 지난해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양파 스프는 내가 만든 것보다 맛이 없었다. 마늘도 열심히 까서 찧어 냉동해놓고 마늘장아찌를 만들어 놨다.

새 봄에 들깨 모종을 심기 전에, 작년에 만들어 놓았던 들깨 부각도 튀겨 먹어버렸다. 또 썩을 까봐 걱정인 고구마도 함께 튀겨 먹었다. 튀김은 맛있지만 칼로리가 높고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피해 왔지만 마음먹고 튀겨 먹었다. 나머지 고구마는 쪄서 으깨어 냉동해 뒀다가 가끔 꺼내 양파를 볶아 우유를 넣고 고구마 스프로 해서 여름에 아침식사로 먹으면 별미다. 작년에 바질을 키워 잎을 따서 마늘, 잣, 올리브유와 파마산 치즈를 넣어 갈아서 만들어놓은 바질 페이스토는 친구와 이웃들에게 다 나눠주고 한 병 남아 있다. 바질파스타를 부지런히 해먹고, 바질 잎을 말려 갈아 만든 바질가루는 떡볶이에도 뿌리고 생선조림에도 뿌려 다 써버리고 말아야지. 그리고 작년에 떨어져 흩어진 바질씨앗이 추위와 눈보라를 헤치고 새싹을 내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이제 부추가 새싹을 올려서 봄비에 쑥쑥 자라고 있다. 눈도 이기고 부추가 서있다. 부추가 더 자라면, 작년에 데쳐서 냉동해놓은 죽순과 함께 다시 죽순이 올라오는 5월이 되기 전에 꺼내 볶아 먹으려 한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죽순은 비가 와야 잘 자라는데 작년 봄에 엄청 가뭄이 심해서 죽순을 별로 수확하지 못했다. 아껴 뒀던 죽순을 먹어버리고 2017년과 작별하려한다.

겨울이 끝나갈 때면 우리 마당에는 유난히 물까치가 횡횡 날아다닌다. 우리 집 오래된 감나무에 둥지를 멋지게 지어놓고 사는 까치도 물까치가 우리 마당에 오는 날이면 깩깩거리며 덩달아 날아다닌다. 자기의 영역을 침해했다고 난리가 난다. 물까치들은 잡아먹을 벌레들이 모자라는지 길고양이를 위해서 담아둔 사료에 앉아 모이를 먹는다. 봄이 무릇 익으면 어디로 가는지 물까치는 사라진다.

 

자목련 나무 가지 위에서 먹이를 살피는 물까치. ⓒ김경애 편집위원
자목련 나무 가지 위에서 먹이를 살피는 물까치. ⓒ김경애 편집위원

 

물까치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길고양이의 밥을 먹는다. ⓒ김경애 편집위원
물까치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길고양이의 밥을 먹는다. ⓒ김경애 편집위원

겨울 꽃과도 작별을 준비해야할 때다. 작년 늦가을 장날에 각각 색깔이 다른 시클라멘 화분 3개를 사서 부엌에 들여놓고 ‘만원의 행복’을 겨우내 누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화분의 영양이 다 소비됐는지 시클라멘은 새로운 꽃대를 못 올리고 있다. 더운 날 시클라멘 화분을 잘 관리했다가 돌아오는 늦가을에 다시 새싹이 트는 것을 보고 싶어 노심초사 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올해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남은 꽃을 열심히 즐기면서 작별 인사를 한다.

 

저마다 살아있음을 알리는 생명들

 

다리를 쭉 뻗고 봄비를 맞고 있는 개구리. ⓒ김경애 편집위원
다리를 쭉 뻗고 봄비를 맞고 있는 개구리. ⓒ김경애 편집위원

여름맞이, 가을맞이, 겨울맞이라는 말은 없는데 봄맞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겨우내 움츠리면서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뛰어나가 맞이하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추운 시골집에서 겨울나기에 지쳐 봄이 온다고 너무 좋아했던 것이 탈인지 봄맞이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개구리가 어느새 다리를 쭉 뻗고 봄비를 맞고 있다. 우리 마당의 연못(?)에도 봄이 되면 개구리가 살고 올챙이가 가득하다. 우리 집 연못(?)은 실은 목욕탕을 수리하면서 떼어 낸 욕조를 마당 가장자리에 땅을 파고 묻은 것이다. 물을 채우고 수련, 연꽃, 부래 옥잠화 등을 심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개구리가 살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욕조 못 속에서만 살지 않고 비가 오면 온 마당을 뛰어다닌다. 어느 해 비오는 날에는 개구리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경을 연출했다. 올챙이 알이 다 부화하면 개구리가 너무 많아질 것 같아 알을 앞 개울가에 내보냈는데, 우리 집에서 보낸 올챙이가 부화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울에서도 개구리가 꽥꽥하고 노래했다.

상사화는 겨울을 지나 우리 집 마당에서 제일 먼저 올라와 있다(사진). 잎이 먼저 올라와서 무성하게 자라다가 다 말라버리고 7월에 꽃대를 ‘슝’하고 올려 핑크 빛과 노란 색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상사화다. 매화도 잎이 올라오기 전에 꽃부터 피우고 꽃이 떨어지고 나면 잎을 내민다. 매실나무와 싸리나무에 푸르른 싹이 올라와서 봄눈에도 견디고 있다. 죽어 있는 것처럼 서있던 나무들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날씨 탓에 죽은 것들이 살아오는 것과 같은 기쁨과 안도가 밀려온다. 온실에서 가불한 봄으로 꽃집에는 꽃들이 이미 만발했지만 마당에서는 금낭화, 매발톱, 히아신스, 플록스, 작약, 수선화, 할미꽃, 튤립이 새싹을 겨우 올리고 있다.

쑥이 마당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작년 봄에 캐서 데쳐서 얼려 놓았던 마지막 남은 쑥을 해동한 뒤, 삼천포 어시장에서 사다 냉동해 놓은 굴을 한 봉지 꺼내서 일찌감치 끓여 먹고 끝냈다. 동네 아지매들과 쑥 캐러 갔다. 동네 아지매들은 능숙한 솜씨로 쑥을 캔다. 마을 회관에서 캐온 쑥을 같이 다듬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자신들이 캔 쑥을 한 줌씩 덤으로 덜어준다. 내 쑥이 제일 많아졌다. 솜씨 좋다고 정평이 나있는 상촌댁이 오늘 캔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었다.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사카린을 너무 많이 넣은 탓이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사카린을 설탕 대신 음식에 넣어먹는다. 그래도 사카린이 보약이라면서 농담하고, 큰 웃음으로 그 실패를 용서하며 쓴 쑥 버무리를 다 먹었다. 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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