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여름이 저편으로 건너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날씨야 아직 더워도 얼마 남지 않은 8월 달력을 보며, 이제 슬슬 시작되는 가을 학기 개강 날짜를 세면서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냈던가, 세웠던 계획들을 다시 되뇌여본다.

대학생들의 방학 계획에 잊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다소 낭만적 이미지의 배낭여행이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방학이면 빼놓지 않는 계획 중의 하나가 ‘마음이 맞는 친구와 여행 떠나기’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감히 여자 둘이서 여행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좋은 친구가 하나 있다. 지난 겨울에 눈 덮인 지리산을 운동화 두 짝으로 올랐던 무모한 여행을 떠올리며 우리는 올 여름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진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4 박5일의 일정으로 떠난 제주도 일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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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도 할 줄 몰라 차를 빌리지도 못하고, 자전거도 초보인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리 품을 팔면서 제주도 해안을 돌고 쉬리 언덕이 있는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고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우도까지 발길을 남겼다. 어디서 내려야할지 몰라 기사아저씨 뒷자석에 꼭 붙어 앉아서 “아저씨 내려주세요” 했던 일도 재미난 기억이다.

우리가 여행을 간 때는 성수기가 조금 지난 시기라 사람이 마구 붐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막바지 휴가를 즐기려는 연인들, 가족들이 꽤 있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가끔씩 우리와 같은 처지의 ‘아름다운 그녀’들을 만나 힘을 얻기도 했다. 내 눈에 그녀들은 새까맣게 탄 몸으로 자전거 일주를 하던 남자 여행자들보다 더 멋지고 당당해 보였다. 여름방학, 연인과의 추억 만들기보다 여자친구와 좋은 우정 만들기를 선택한 그녀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겁 없는 그녀들이 여자들끼리 여행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가면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데 가는 곳마다 찍은 사진들을 내 친구 나중에 혹시나 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할거라고 했고, 나는 사진을 보면서 두고두고 여행의 기억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여자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늘 내게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남겨준다. 난 그녀와의 여행을 통해서 배짱과 용기와 친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운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김이정민/연세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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